얼마전 골프선수 최호성 프로의 제멋대로 스윙이 꽤나 화제였다. 과거 칸투칸 플랫폼에서 나름 골알못 입장에서 골프 칼럼을 연재했던 입장으로서, 그의 스윙이 꽤나 재밌게 느껴졌다. 최호성 프로의 스윙은 소위 정석적인 스윙과는 거리가 있는, 이른바 ‘낚시꾼’ 스윙으로 불리는데, 스윙 뒤에도 전신의 회전과 원심력이 어찌나 심한지 뒷발과 몸통이 다 따라서 돌아가는 듯한 모양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최호성 프로는 이 독특한 스윙으로 일본 무대에 진출한 후 일본 골프투어 상금랭킹 10위에 랭크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더 흥미를 느낀 것은 최호성 프로의 스윙보다도, 그가 그 스윙을 택한 이유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요즘엔 다들 비거리도 잘 나오고 하다보니, 저도 살려고…’ 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늦은 나이와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비거리를 늘려 경쟁력을 확장하고 싶다는 열망이 보여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일본에서 그의 별명도 ‘한국에서 온 호랑이’ 였는데, 일본 팬들은 그의 독특한 스윙도 스윙이지만 그 스윙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승리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승부욕’을 느낄 수 있어 인기라고 했다.

그러고보면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게 된다는 건, 어찌보면 인간이 한번 태어나서 사는 인생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닌가 싶었다. 어떤이들은 평생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보지를 못하지만, 또 어떤이들은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 후세에도 길이길이 빛나는 아주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극작가’ 라는 직업을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뒤로는, 오로지 ‘자신만의 스타일’, ‘나만이 쓸 수 있는 희곡’ 이란 뭘까 굉장히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으니.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는 여러 선수가 있지만, 가장 최근에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팀 린스컴이었다. 그의 폼은 역동적이었고, 나는 그런 그의 폼을 사랑했다. 온몸을 트위스팅하여 완전히 한 점에 힘을 모은 그가 공을 뿌릴 때면, 그 조그만 체구에서도 엄청난 강속구가 나왔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 하나하나를 던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 공 하나가 마지막인 것만 같은 어떤 비장함마저 묻어나왔었다. 팀 린스컴은 작은 체구를 보완하기 위해 ‘투창’에서 모티브를 따와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던 폼이라고 했고, 자신은 그 폼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늘상 말해왔었다. 더불어 자신의 투구 폼은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폼이라며 자부심도 잊지 않았으니.

그런 그의 하락세가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겠다.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했던 이 전설적인 투수는, 몇 년뒤부터 점차로 구속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기나긴 부진의 늪에 빠졌다. 전문가들이 그의 투구폼을 보면서 너무 신체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다 쓰는 폼이기에 부상과 기량 하락을 염려했던게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었다.

비슷한 예로는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90년대 박찬호와 함께 동양인 메이저리거의 신화를 썼던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있겠다. 노모 히데오 역시도 그 ‘토네이도’ 폼으로 역동적인 트위스팅 딜리버리를 가져가며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그 역동적인 투구폼에 야구까지 잘하니, 안 좋아할 수가 있었겠는가. 재밌는건 노모의 그 ‘토네이도’ 투구 폼은 노모가 야구를 해왔던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정석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폼이라는 것이었다.

노모 히데오가 첫 프로계약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투구 폼에 손을 대지 않을 것’ 이었던 것을 보면, 그의 고민을 알 법도 하다. 팀 린스컴 역시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첫 계약을 맺을 당시 ‘자신의 투구 폼에 대해서 토를 달지 말 것’, 을 계약 조항으로 맺어놓았던 걸 보면, 두 투수의 성격과 기질 역시도 비슷한 것이 재밌어 보인다.

노모 히데오의 경우는 더 특별한 일화가 있어서 내가 더 좋아하는 선수기도 하다. LA 다저스의 동료이자 광속구로 유명했던 박찬호 선수는 항상 노모 히데오의 포크볼을 탐을 내서 쉬는 시간이건 언제건 포크볼을 좀 전수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노모는 박찬호에게 ‘내가 너만큼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다면 포크볼은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며 돌려서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일화에서 나는 노모가 자신이 추구하는 ‘빠르고 위력적인 공’을 던지기 위해서 그 간절한 투구 폼을 만들어냈던 것이 연상이 되었다.

확실히 노모의 투구폼은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너무나도 신체의 밸런스를 파괴하는 폼이었다. 야구, 특히나 투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노모는 신체의 한쪽만을 이용해서 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더더군다나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수평으로도, 수직으로도 한계치만큼 자신의 몸을 비틀어 놓은 다음 공을 뿌려댔었다. 결국에는 잦은 부상으로 이어졌고, 앞서 말한 팀 린스컴처럼 부상과 기량하락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모가 위대했던 것은 끊임없는 도전 정신이었고, 동시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 했다는 것이었다.

최호성 프로든, 노모 히데오든, 팀 린스컴이든 분야는 다르지만 어떻게든 남보다 특출난 무언가를 갖기 위해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한 케이스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 이라는 건 사실 느긋하게 자기 인생을 살대로 살다보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뭔가 절박하게 매달려 봤던 사람, 그리고 꼭 이기고 싶었던 누군가가 있어서 어떻게든 그들을 이기고 1등이 되기 위해 미친 듯이 고민했던 사람들이, 그 고민의 결과물로서 내놓는 것이 ‘자신만의 스타일’ 이 아닌가 싶었다. 비록 그 ‘스타일’이라는 것에 유통기한이 있다 해도, 사람들이 그 ‘스타일’에 얼마나 열광을 하고 사랑을 보내는 지도 말이다.

그래,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은, 치열하고 절박한 시도 끝에 나오는, 어찌보면 치졸하기까지 한 것일 수도 있다. 빠른 공 한번 던져보겠다고 몸을 한계의 한계까지 비틀어댔던 팀 린스컴과 노모 히데오의 공통점이 어찌보면 그것일 수도 있겠다. 비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려서 젊은 골퍼들과 경쟁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최호성 프로의 마음이 그러했던 것일수도 있다.

이유와 중간, 끝이 어떻든간에 나는 그런 ‘스타일’들을 항상 사랑해왔다. 나는 어떤 ‘정석적인 것들’ 보다도 항상 미숙하더라도 자신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해왔다. 실제로 내 인생도 그러했었고 말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글을 쓰고 공부하던 학창 시절에는 정말로 ‘나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었다. 사실 그건 모든 작가 지망생들의 꿈이 아니겠는가. 읽기만 해도 아 이 글은 누구 글이구나가 감이 오는 정도의 독창성과 개성은 둘째치고, 그만한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작가의 문턱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니 말이다.

난 처음에는 그런 스타일들은 그저 ‘오래된 연마’ 끝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내 스타일’을 살리지 않고 감추는 걸 택했었다. 지도 교수들도, 주변의 친구들도 내가 쓴 글을 좋다고는 했지만, 사실 모두가 조금씩은 내 글에서 2%가 부족한 걸 느끼고 있었다. 다만 친구는 좀 그걸 알아듣기 좋게, 교수는 듣기도 짜증나게 갈구는 게 차이점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좀더 ‘테크닉’보다는 글을 씀에 있어서 ‘나의 목소리’를 신경쓰게 된 계기도 따로 있었다. 내게는 정말 친한 동생이자 대학 동기가 있는데, 내가 평소 ‘누가 글을 잘 쓴다’ 라는 소리를 하기도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만큼은 정말 글을 잘쓴다고 생각해왔었다. 나는 어찌보면 그 친구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질투와 시기심, 자격지심 같은 것들을 갖고 있었다. 나나 그 친구나 어디가면 글을 잘 쓴다는 평은 받았었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 친구 글이 뭔가 좀더 본능적이고, 감성을 자극하고, 뭣보다 읽은 사람들이 다 재밌어 했었다. 내가 쓴 글은 뭐랄까, 그냥 좀 기계적인 부분이 강했다. 테크닉에서도 문법에서도 캐릭터를 창작하는 것에 있어서도. 한마디로 감상평들의 대부분은 ‘너 글 잘 쓰는거 알겠는데…’ 라는 식이었다. 아무튼 울림이 없다, 이 얘기였다.

나는 턱걸이로 들어온 전문대졸 이상 특별전형의 나이 든 복학생(1학년 입학당시 24세) 정도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항상 정말로 재능이 반짝반짝하는 젊은 아이들보다는 내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테크닉에 집착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헌데 그 친구는 달랐다. 언제나 준비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나처럼 테크닉처럼 접근하기보단 바로 그냥 생각한걸 표현해버리는 스타일이었다. 글에서든, 실생활에서든.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언제나 저 친구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었다. 그래서 어느날 미친척하고 정말 그 친구처럼, 많은걸 다 계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Feel’을 살려서 썼던 대본이, 지금은 내가 쓴 대본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희곡이 되었다. 그 친구조차도 내가 썼던 그 희곡을 보고는 ’형이 드디어 정말 마음에 걸리는 거 하나없이 자기 쓰고싶은 걸 마음껏 쓴 것 같아 너무 좋다‘ 라는 평을 받았을 때, 그때의 그 기분이란 얼마나 좋았던지. 그때부터 나는 ’테크닉‘보다는 ’나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고 표현하려 노력해왔던 듯 하다.

골프선수의 스윙에서 시작해 야구선수의 투구폼에서 나의 자격지심까지 길고 긴 이야기를 돌아왔다. 그러나 종합해보건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길거라 생각하는 건 기만이자 나태함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것 없어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아진다. 하지만 오로지 역사의 흐름속에서 고고하게 후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싶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르다.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건, 그만큼 남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신호이고, 그것은 그만큼 함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