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새해 다짐과 함께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다양한 목표가 있겠지만 빠지지 않는 것이 자기계발을 위한 자격증이나 외국어 공부, 건강을 위한 운동 혹은 다이어트, 그리고 독서이다. 독서는 많은 사람들의 계획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반해, 전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니 많지는 않지만 읽은 책이 어느 정도 되어 전혀 읽지 않은 4명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읽는 편은 아니다 보니 왠지 찔리기도 한다. 한때는 나도 취미가 독서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그때는 거창한 것 없이 ‘흔해빠진 책 읽는 것 따위를 취미라고 말해야 하나’라며 나란 사람이 너무 별 볼 일 없이 느껴졌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교과목 이외의 책 읽기는 필요 없다는 분위기였다. 책 읽을 시간에 공부라도 한자 더 하라던지, 수능에서는 지문만 잘 읽을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 인식의 영향인지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전공서적 이외의 책은 그다지 읽지 않게 되었다. 간혹 선물 받은 책이나 관심 있는 작가의 책이라도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학시절에도 읽지 않던 책을 직장인이 되어 더 많이 읽을 리 없었다. 취미생활은 뒤로하더라도 직장생활 만으로도 왜 이리 지치는지 만성 피로에 쉴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필요한 정보는 두꺼운 책을 읽어 찾기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빠르게 찾을 수 있으니 더 효율적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책을 읽는 인구는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다. 친구를 기다리거나 대중교통에서 책을 보던 사람들의 시간 때우기는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었으니 책 읽는 시간은 확실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더 재미있고 방대한 양의 정보들이 검색만 하면 쏟아져 나오니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재미있고 편리하기까지 한 인터넷을 두고 굳이 신년 계획에 독서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는 희망도 미래도 없다.”라는 거창한 말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소소하게 나의 경험담에서 이야기하자면 ‘필요’에 의해서였다. 정보를 얻기 위해 해당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할 필요를 느껴서였다.

독서를 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의사 문맹’이라는 말이 있다. 의사 문맹은 문해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짧고 간단한 글은 읽어도 복잡하고 긴 글은 읽을 수 없거나, 글자를 읽어도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읽기 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실 저 내용을 처음 알게 되었을 당시는 설마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읽고 쓰기는 가능하고 전문서적같이 어려운 내용이 아닌 이상 읽는데 크게 무리를 느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회사에서 추천하는 권장도서를 읽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글을 읽을 수 없거나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술술 읽히지도 않았다. 재미가 없어서 읽기 싫은 것이 아니라 읽고는 있지만 시원스럽게 읽히지 않고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두 번째 문제도 일어났다. 연말 이벤트로 고객에게 손편지를 쓸 일이 생겼는데 한 줄을 쓰고 나자 머리가 하얘졌다. 예전에는 편지지 3장은 거뜬했고 최근에도 업무 관련 내용을 쓰는 것에도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는데 업무 외 글 쓸 일이 생기자 앞이 막막해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아 마치 그 능력이 퇴화된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책을 아예 읽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억울하기도 했고 책 한 권 금세 읽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어느 정도의 독서는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지 않는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그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책 몇 권을 읽었다고 갑자기 엄청나게 지적인 사람이 되거나 삶의 진리를 깨우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읽다 보면 분명히 느낄 것이다. 작지만 희미하게라도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고 있음을 말이다. 읽는 책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SF 소설을 꾸준히 읽어 상상력이 발달할 수도 있고, 답답해서 읽었던 책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의사 문맹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글자를 읽고도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