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탱고 동호회에 오래 계셨던 분이 내게 물어봤다.

“이제 들어오신 지 얼마나 됐죠?”

나는 햇수로는 2년, 곧 3년차가 된다고 얘기했다. 별 대수롭지 않은 물음이었고, 실제로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그날 모임이 좀 길어지고, 파티가 길어지고, 뒷풀이에서 술자리도 좀 길어진 뒤에 그분이 내게 다시 말을 하셨다.

“한 동호회에서 5년, 7년 이상 계속 하는 건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것 같아요.”

대화의 맥락상 뜬금없이 나온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렇기에 나도 그저 덤덤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보다 동호회 생활을 오래 하셨다 보니, 처음에 같이 하다 하나둘씩 떠나가는 분들을 워낙 많이 보셨던 것이었다. 좋게 떠나든, 안좋게 떠나든, 어떻든지간에 한 곳에 머물러서 너무나도 긴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서로에게 그다지 플러스 요소는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헤어짐이란 사실 필연적이라는 이야기도.

뭐, 사실 인연이란 게 다 그렇지 않겠는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반드시 만남이 있는 법이니. 어찌보면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나고,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기도 하니까. 좌우간 결론은 이렇게 났다.

결국엔 그저 탱고가 좋은 사람과, 사람이 좋아서 남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는 걸로.

나는 뭐라고 해야할까? 지금은 솔직히 둘 다에 속하는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탱고를 배운지도 이제 3년차로 향해가는 중이고, 동호회 생활 역시 마찬가지니 당연한 거겠지만 말이다. 벌써부터 춤이 질리고 사람이 질색이라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 거니까. 사실 나중 일은 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탱고는 죽을때까지 추고 싶은 춤이고, 지금 당장은 이곳 사람들이 너무 좋으니까.

그러나 나중 걱정이라기보다는, 역시 그런 생각이 또 들기는 드는 게 어쩔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역시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특히 인간관계가 일정 이상 가까워지다보면(오히려 어느정도 멀어지면 괜찮다) 어떤 식으로든 껄끄러운 일들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한순간에 관계가 틀어져서 안좋게 헤어지고 나가는 경우를 한두번 본 게 아니었다. 사실 한 두 번이 아닌 수준을 떠나서, 어느 조직이나 모임에 가든 너무 많이 봐 왔다.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다니던 태극권 도장이 폐업 수순에 들어갔다. 관장님이 연세도 너무 많으시고, 건강도 슬슬 염려가 되시는 차에, 도장으로 임대를 했던 공간의 월세가 너무나도 감당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도장에 등록하는 회원들의 수가 확 줄었고, 뭣보다 도장을 새로 물려받거나 인수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다.

관장님은 사실상 은퇴를 하시는 상황이고, 그래도 관장님의 태극권에 대한 배움이 고픈 나를 포함한 회원들은, 관장님이 도장을 정리한 뒤에도 일주일에 1번 정도는 연습실을 대관해서 강습을 해주신다고 하니 감지덕지해하고 있다. 그전에 기존 회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관장님 도장을 인수하면 어떠냐부터 시작해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앞에 열거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결국에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5일을 체육관에 나와서 운동을 하던 나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강습을 계속 받는다고 쳐도 일주일에 1번이 조금은 적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럼 남아있는 회원들끼리 동아리처럼 만들어서 운영을 하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회원들은 대부분은 좋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한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사실 이곳 태극권 도장도 앞서 말한 탱고 동호회와 비슷한 문제를 다 내재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 문제였다. 싸우고, 또는 감정이 상해서, 같은 이유로 정말 여러 사람들이 도장에 머물렀다가도 떠나곤 했다. 관장님이 워낙에 고령이시고, 또 옛날 분이신 데다가, 중국 교포 2세시기 때문에 고향도 중국이시고, 아무래도 한국 정서나 어떤 ‘서비스’ 적인 마인드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분이셨다. 관장님의 태극권이 좋아서, 그래서 관장님에게 태극권을 배우고 싶은 나 포함 대부분의 회원들이 한번씩은 그런 관장님에게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

나는 가끔 정말 심각하게 ‘나야 욕하면서도 관장님의 실력이 좋아서 정말 엎드려서라도 절을 하며 배우는 입장이지만, 이러다 신규회원이나 또 감정이 상해서 나가는 회원들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결국엔 그 우려가 현실이 되어서 도장의 폐업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좌우지간에 태극권 도장에서는 탱고 동호회와는 어쩌면 반대되는 이유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마찰이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다.

탱고는 춤도 좋고 사람도 좋지만, 사실 사람이 별로였다면 탱고에 이정도까지 애정을 주거나 ‘오래오래 죽을때까지 배워야지’, 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 같다. 반면에 태극권은 엄밀히 얘기하자면 관장님의 서비스적인 마인드나 그 옛날 사람 성격, 그리고 같이 하는 사람들만을 생각한다면 결코 이것을 지금처럼 오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태극권은 정말 딱 하나, 관장님의 실력, 태극권 하나만을 보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 관장님이 더 센 가격을 부르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욕을 하면서도 결국엔 배우러 갈 것이다. 내가 그럴 사람이란 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어찌보면 재밌는 이야기다. 춤이냐 사람이냐, 태극권이냐 사람이냐. 뭐가 더 중요하냐고 했을 때 당연히 정답은 ‘둘 다’ 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우선순위가 행위일수도, 사람일수도 있다. 춤도 좋지만 사람도 좋다. 반면에 사람이 안 좋아도 태극권은 확실히 좋다. 뭔가가 ‘사람’이라는 것과 결부가 된다면 결국엔 이상적인 조화, 즉 그 ‘무언가’와 ‘사람’ 둘다를 원만히 하지 못한다면, 결국 둘 중에 하나를 택하게 되는 것 같다.

연애를 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연애가 좋은지, 아니면 그 사람이 좋은지. 당연하게도 정답은 ‘그 사람과의 연애가 좋다’ 는 거지만, 세상 일이란게 그리 쉽게 흘러가나. 난 때로는 정말로 ‘연애’는 너무 좋은데 ‘그 사람’은 진절머리가 날 때도 많았다. 사이좋게 즐겁게 데이트 잘 하고 와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거의 밤새도록 훈계를 들어야 했던 일. 나는 되고 너는 안돼, 라는 그런 내로남불식의 사고방식이 그저 단순한 애교가 아니라 정말로 평소 본인의 싸가지라는 걸 알았을 때의 스트레스. 당연하지만 그 반대되는 경우에도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뭐든 사람과 결부되는 일은 어쩔수가 없는 것 같다.

하필이면 내가 지금 또 연극을 하고 있네? 연극은 정말… 사실 요번에 연극을 하는 것도 졸업후 4년만이니, 처음 시작한 때로부터 세면 8년, 연차로는 9년차가 된다. 연극 9년차라… 이렇게 얘기하니 진짜 무슨 고인물 같지만 아직 졸업후 첫 연극을 못 올린 작가인 것도 좀 웃기다. 뭐 곧 공연은 올라가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연극 9년차가 될 동안, 주변에서 정말 수없이 많은 선배, 동기, 친구들이 연극을 접고 떠나는 모습을 봐 왔다. 아직까지 활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다. 나와 별로 안 친한 선배들은 신기하게 아직 연극을 계속 하는 비중이 높긴 한데, 뭐 안 친한 선배들이야 교류가 없으니 별로 할 말이 없고. 정말 친했던 동기나 친구들 중에서는 연극을 관둔 비율이 아주 높다. 연기전공인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글을 쓰는 작가들, 연출을 했던 연출들, 오랜만에 연극하려고 없는 인맥 영혼까지 끌어모으려고 전화를 돌려보다 보면 꼭 3번 건너 1번 씩은 ‘나 이제 연극 안해’ 라는 말을 듣게 됐다. 어찌보면 이해는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야속하기도 하고, 끝에가서는 그래도 버텨서 연극하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가도 바보같기도 하고 정말 좀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고…

재밌는 건 연극을 떠난 이유는 거의 70%이상 하나로 귀결된다. 물론 연극이 싫어서 연극을 떠난 경우도 있고, 사람이 질리고 지쳐서 연극을 떠난 경우도 있다. 근데 연극에서 사람 문제는 거의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자석과도 같다. 왜냐면 연극이란 행위 자체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나가는 것’ 이고, 그러니 그 행위 안에서 ‘사람’이 싫어질수록 결국엔 ‘연극’도 싫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나는 원래 예대3년을 다닐 동안은 휴학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전에 이미 다른 대학도 2년을 다니다 왔고, 군대도 갔다왔는데 쉴 여유는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오산이었다. 1년 반만에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졌고, 특히 사람이 너무 싫었다. 내가 특정 누군가, 혹은 사회에 대한 증오나 혐오감을 표출하는일이 유독 잦아졌던 게 이 때 쯤이었다. 이때는 정말 휴학을 하며 목표가 ‘연극과 관련 없는 곳에서, 연극과 관련 없는 사람들만 만나고, 연극과 관련 없는 일만 하는 것’ 일 정도였다.

아이러니한 건 연극을 2년 떠나있으니, 왜 그렇게 또 연극이 미친 듯이 하고 싶던지. 떠나 있던 동안에 나는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건 사람이지 연극이 아니었다고. 사람이 싫어도 나는 연극이 너무 좋다고. 그래서 연극을 관두기는 싫다고. 사람을 관뒀으면 관뒀지.

그래서 내 삶에 인맥이란게 좁은 걸 수도 있겠다. 굳이 따지자면 넓은 인맥 같은 걸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니. 친밀하고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여도 좋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연극하고 탱고추고 태극권이나 하면서 100살넘게 살면 소원이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