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태도

누구나 가끔 대책 없이 감정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어릴 적엔 오후 5시쯤, 햇살의 명도가 낮아지고 어스름이 깔리면 나는 괜히 무기력하고 슬펐다. 다 커선 통장의 잔액이 예상보다 적거나, 열심히 글을 써도 제자리인 것만 같을 때 무기력했다. 내일이나 다음 주, 다음 달이 아니라 몇 년 단위로 인생의 먼 곳까지 가늠하다보면 어김없이 무기력했다. 몸무게가 늘어나고 100kg이 넘는 무게를 너끈히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기력이라는 건 기분 나쁜 질감의 액체 같아서 부지불식간에 존재의 틈새로 스며들었고, 사람은 완전 방수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럴 때, 나는 푹 젖은 솜처럼 널브러져서 다시 기분이 보송보송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젖은 것들은 언젠가 마르는 법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마르기는커녕 짓무르는 연약한 부위들이 쓰리고 괴롭기만 했다. 산다는 게 다 뭘까. 애쓰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비관론과 염세주의를 지나 허무주의에 이르면 그런 같잖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술이나 담배를 찾지 않았다는 건 다행스럽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무기력(無氣力), 말 그대로 기운도 힘도 없는 상태일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없는 기운과 힘을 더 끌어다 쓰는 것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비척비척 걸어 헬스장으로 향하거나, 질기고 퍽퍽한 닭 가슴살을 씹는 심정으로 책을 펼쳐 텁텁한 문장들을 읽었다. 뜨거운 물을 낭비하며 오래 샤워를 하거나, 별 볼 일 없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걷기도 했다. 당장은 힘들고 버겁게만 느껴지던 일들을 꾸역꾸역 해내다 보면 희한하게도 다시 기력이 차올랐다.

숨통이 틔고 눈이 맑아지는 기분. 어깨며 허리며 다리의 관절들이 개운해지고 안면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 문득 젖어있던 존재의 곳곳이 보송보송해지는 게 느껴지고, 산다는 게 뭐 별 건가 싶은 출처불명의 자신감도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회복하는 것이다.

무기력할 때 기력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태도.
무(無)로부터 생겨나는 삶의 유의미함.
어쩌면 사람은 그런 역설적인 태도 덕분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