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집에서 혼자

 

아이들을 영화관에 보냈다.

이제는 꼭 나와 아내가 옆에 있지 않아도 되는 나이.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되는 광고를 뚫어지게 보며 엄마는 나가 있을 거란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아마도 잠시 주어진 시간에 쇼핑을 하고 잠시 잠깐 한가로운 커피 한 잔을 할 것이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영화관에 데려다주고는 집에 왔다.

혼자다. 낯설다. 고요한 집이 좋으면서도 허전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혼자 집에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다. 평일 퇴근 후엔 항상 아이들이 ‘아빠~~~!’를 외치며 달려온다. 아무리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얼마가 들어가고, 노후를 포기해야 하며, 좀 더 크면 굵은 목소리로 부모님의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 해도, 지금의 그런 아이들을 보면 모든 것이 잊힌다. 주말에도 함께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어디라도 간다. 아직은 가족끼리 한 차에 올라,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니, 집에 혼자 있는 이 느낌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 소란한 아이들이 없으니 아이들의 흔적을 마주한다.

어지럽게 널려진 아이들의 물건들은 동심 그 자체다. 읽다가만 책, 오리다가 만 색종이, 먹다가 남긴 음식, 여기저기 벗어젖힌 옷가지들. 왠지 모르게 난 그 어지러운 가지가지들이 좋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하고 싶고, 보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으면 저럴까. 분주한 아이들을 나는 사랑한다.

아내의 흔적도 선명하다.

대개는 분주한 아이들이 여기저기 어지럽힌 걸 수습하는 흔적들이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설거지와 빨래.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난 그것을 느낀다. 아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내올 그릇이 없고 입을 옷이 없을 텐데 그게 끊기는걸 아직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어머니께 당연하게 여겼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경험하며 어지른 모든 것들은 아내의 손끝에서 온 것이고, 먹다가 남긴 음식엔 아직도 아내의 정성이 한가득이다.

나는 주섬주섬 너무 심하다 싶게 분주한 흔적들을 치우고, 남겨진 설거지를 한다.

수건 바구니에 들어간 아이들의 양말과 속옷을 제 바구니에 넣고, 멋대로 놓인 아이들의 의자를 가지런히 한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며 깔깔대고 있을 것이고, 아내는 향긋한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난 벌써 가족들이 그립다. 언젠간, 뿔뿔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개척하고 이어나갈 아이들. 결국 남는 건 우리 둘 뿐이라고 나는 아내에게 매번 강조한다. 집에 혼자 있는 이 순간이 잠시 자유로워 편안함을 느끼지만, 무언가 허전하고 그립고 불안한 마음은 그것과 공존한다.

낮에, 집에서 혼자 있는 건 좋다.

아마도 그건 간만이라서일 것이다. 사람은 분명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나를 돌보고 나면 결국 혼자 남아 생각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가족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혼자 있어봐야 다른 이를 사랑할 줄 알고, 다른 이를 사랑해야 혼자 있을 줄도 안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러한 반복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가족은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