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은 차별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는데 자연의 초록색이라기보다는 약간 인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밝은 청록색 차량 속의 구도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운전석에는 백인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고 뒷좌석, 그러니까 일명 사장님 자리에 흑인이 거만해 보이는 포즈를 취하며 도도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피부 색상과 관계없이 운전사가 되기도 하고 오너가 될 수도 있지만 포스터 문구와 이미지는 벌써 인종차별과 그 사이의 특별한 우정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선택이 아닌 추천에 의한 관람이었기에 ‘그린 북’이라는 제목 외에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포스터에는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가이드 그린 북’이라고 되어 있어 단순히 저런 책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초반부를 지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그린 북’이 어떤 책인지 알려준다. 나는 책의 정체를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을 줄여 Green Book이라고 불린 이 책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을 뜻한다. 당시 심한 인종차별로 인해, 흑인들은 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지 않았으며 지정석에만 앉아야 했다. 이것 역시도 안전하게 이용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휴게소, 주유소, 숙소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이에 우편배달원이었던 빅터 휴고 그린은 흑인들이 여행하면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 휴게소, 주유소 등을 표기해둔 책을 제작하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이드북이 아닌 안전을 위한 생존 지침서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흑인들의 여행 필수품이었던 이 책은 당시 시대상을 나타내는 차별의 상징이었다.

특이점이라면 이때까지 보아왔던 인종차별 영화 대부분은 백인이 부유한 위치고 흑인이 그렇지 못한 위치에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반대의 위치에 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백인이 하층민 위치에 있고 흑인이 상류사회에 속해있다. 영화는 인종차별주의자 주인공 토니(백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생계유지를 위해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앞으로 자신의 고용인이 될 ‘돈 셜리 박사'(흑인)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는 마치 왕족이라도 되는 듯 화려한 의상을 입고 높은 위치에 있는 의자에 앉아 토니를 내려보며 면접을 진행한다. ‘인종차별이 심해도 여기서는 내가 최고의 위치야’라고 말하는 듯한데 상류계층의 갑질과도 겹쳐 보이는 장면이다. 이런 대조적인 위치나 본인의 품격과는 상관없이 돈 셜리 박사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심한 인종차별을 받는다. 피아노를 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백인 사회에서 그는 일반 흑인과 동일한 대접을 받는다.

그의 훌륭한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초대하고서는 그것이 끝나자 넌 흑인이니까 우리랑 같은 식당, 화장실을 쓸 수 없어라는 논리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흑인을 싫어했던 토니와 자신의 지성을 뽐내며 시종일관 고고하게 품격 있는 자세를 유지하던 돈 셜리 박사는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이해하고 점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을 전달한다.

그리고 한때는 일 년에 200만 부까지 발행됐던 그린 북은 1966년 출간이 중단됐다. 그린 북 서문에 빅터는 “언젠가 이 가이드북이 출간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미국에서 우리가 인종으로서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갖게 되는 때에 말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차별이 서서히 줄어들었기에 안전을 위한 안내 가이드 책자 같은 것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차별이 줄어들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곳곳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차별과 갑질을 보게 된다. 보수적 성격, 특히 유색인종 음악을 무시한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아온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만 해도 그렇다. 2017년 아델과 비욘세는 4개 부문에서 함께 후보로 올랐는데 시상식 결과도 나오기 전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욘세는 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가장 우수한 레코드와 앨범의 기준에 따라 수상한 것이겠지만 결과는 아델이 4개의 상을 독차지했다. 아델은 마지막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비욘세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말들과 트로피를 반으로 부러뜨리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이라는 ‘그래미 어워드’의 보수성은 마치 백인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