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라는 영화가 있었다. 별 내용도 없이 그저 커피와 담배가 인생에서 얼마나 풍요로운 기쁨을 주는지 노래하는 단편영화였다. 미국적인 정서가 꽤나 듬뿍 담겨있는 영화였는데, 아마 커피나 담배나 건강에 썩 좋지 못하지만 역시 그것이 아니면 줄 수 없는 감성이란게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커피도 그렇게 중독자 수준으로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커피같은 경우는 사실 너무 과도하게만 마시지 않는다면 매일 일정량을 마시는게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도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때는 실감하지 못하던 거지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카페인에 민감해지면서, 커피도 많이 마셔봤자 하루 최대 2잔으로 조절을 하고 있다. 정작은 하루에 커피를 2잔 먹는 일도 드물고, 그 이상 먹는 일은 정말 1년에 1번 있을까말까하다.

커피의 단점은 1번 입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고, 2번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어진다는 것이고, 3번은 그래선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커피를 마시면 체온이 떨어져서 추위에 떨게 된다는 것이고, 4번은 가격이 비싸서 지갑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1번은 어느순간 알게된 사실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입안이 좀 불쾌하게 말라붙는다는 생각은 늘 해 왔지만, 그게 악취로 이어진다는 상상은 잘 못했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정말 문득 깨닳았는데, 정말 나 자신의 구취가 이렇게 부끄러울 줄은 몰랐었다.

항상 커피를 마시면 어떻게든 입을 헹구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들도 필요가 없는 곳이 바로 군대였다. 군대에서는 심지어 경계근무를 밤을 새서 섰기 때문에 군 부대안의 모두가 커피를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 살면서 짧은 시간동안 가장 많은 커피를 마셨던 나날이 아닌가 싶다.

커피도 아메리카노 같은 에스프레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가 없었고, 그저 맥심 믹스 커피를 총알처럼 일고여덟개를 탄띠안에 품고 있다가, 근무를 서다 들어가는 대기초소에서 내거 한잔 같이 근무서는 선임거 한잔 해서 2잔을 타내야 했다. 선임은 또 거기다 냉커피를 좋아해서 믹스커피를 담은 잔에 뜨거운물은 조금만 담아서 살살 물에 녹여낸뒤에 찬물을 듬뿍 따라서 자체적으로 냉커피를 만들어내야 했었다. 나는 그런거 없이 그저 믹스커피를 봉지 2개씩을 풀어서 하룻밤새에 2잔이고 3잔이고 마셔야 했었다. 그러면 총 믹스만 6봉지를 먹는 꼴이었다. 근무를 서는 내내 잠을 잘 수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잠을 쫓아야만 했었다. 근무를 설 때는 좋았는데, 문제는 들어와서 잠을 자려고 하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럴때는 어찌나 짜증이나고 울화가 치밀던지. 밖에서 근무설때는 커피를 그렇게 마셔도 졸린 기운이 찾아오더니, 침대에만 누우면 도로 말짱해지는지.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그 입냄새였다. 근무를 서고 들어오면 보통 잘못을 했건 안했건 아니면 그저 아무일도 없었건간에 보통 선임에게 붙들려서 갈굼을 먹곤 했었다. 졸린 눈을 부여잡고서 열중쉬어 자세로 시선을 아래에 박고 그저 선임의 욕설에 ‘죄송합니다’만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다 보면, 커피를 마시고 나서 말라붙은 선임의 입에서 정말 형용할수 없는 악취가 흘러나와 내 코와 폐에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욕설보다도 그 냄새가 너무 불쾌해서 슬펐다. 그리고 그 냄새가 필경 내 입에서도 똑같이 나올 것임을 알았기에, 내 존재가 너무나도 우울했다.

2번은 계절에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지만 3번은 특히 겨울에 자주 발생해서 괴로운 일이었다. 추운 겨울, 할 일 없는 한가한 날, 약속도 없고 스케줄도 없는 그런 날, 눈이라도 오면 더 좋은 그런 날, 일찌감치 해가 뉘엿뉘엿 저문 겨울저녁에 가습기와 온풍기의 열이 풀풀 나오는 동네 단골 카페로 가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 이상의 행복과 여유는 떠올리기가 힘들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말했다시피 커피를 마시면 발생하는 이뇨작용인데, 이건 여름겨울 가리지 않고 발생하다보니, 겨울이면 꼭 화장실에 다녀와서 낮아진 체온 때문에 차가워진 손발을 비비며 감기 걱정을 해야 했다. 이게 참 곤란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날이 추워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당장은 몸에 온기가 돌고 좋지만, 조금만 지나면 화장실에 가야하고 다녀오면 그때부턴 오들오들 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결국 카페에는 얼마 있지도 못하고 급히 식어버린 몸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었다.

결국 언젠가부터 겨울에 커피보다는 차를 주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차를 마시는데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도 되었지만, 어쨌거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간단한 기호식품 하나를 마시는데도 그날의 컨디션을 봐야 한다는 일이. 거기다가 밤이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커피를 마시고나서 잠에 들기가 힘든 일이 반복됐기에, 어느순간부터 커피를 마시는 일은 1번의 이유와 2,3번의 이유를 합쳐서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 부담스러움에 더 기름을 부어주는 것이 바로 4번, 경제적 손실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하루 일과가 카페에 가는 것이었던 적도 있었다. 모든 독서, 공부, 글쓰기를 다 카페에서 해결했었다. 적어도 하루에 1번은 카페에 갔고, 많게는 2번, 드물게는 하루에 3번씩도 예사로 가는 일이 흔했다. 개인 작업실이 없는 나는 사실상 부모님과 같이 사는 본가의 내 방이 작업실겸 침실인데, 잠을 자는 공간이다보니 어느정도는 준 작업실처럼 분리의 필요성을 느껴서 찾아간 곳이 바로 동네 곳곳의 카페들이었다.

커피 한잔에 3000원이면 싼게 요즘 물가이고, 조금 비싸면 거의 4000원돈이니, 하루에 커피를 2잔만 마셔도 8000원에 3잔을 마시면 벌써 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하루에 카페를 2번 내지 3번을 갈 정도의 스케줄이라면 거의 밖에서 식사까지 전부 해결을 한다는 건데, 그러면 하루에 벌써 식대 포함 꽤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이었다.

암만 내가 직업이 작가라지만, 그래서 공부에 독서에 작업까지 전부 특정 공간에서 하는 게 필요하다지만,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었다. 그나마 요즘에는 공간은 포기하더라도 기분이라도 내는 겸, 혹은 약간의 카페인으로 도핑을 하는 느낌으로 편의점 아메리카노를 사 마시고 있다. 그것조차도 한잔에 1200원 정도니, 매일 마시면 한달로 치면 3, 4만원 돈이 그냥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열거한 수많은 단점 때문에, 내가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커피는 내게 약간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안먹을 수는 없고, 아예 안먹기는 좀 그런데, 안먹을라면 또 안먹을 수는 있는데, 굳이 그래야되나 싶기는 한, 그렇다고 또 먹었을 때 장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아무튼 뭔가 애매하고 또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그런 존재.

최근에는 현금을 쓸 일이 많이 없었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한번 현금을 쓰고 나서 거스름돈들을 테이블에 팽개쳐놓고 몇일을 방치한 일이 있었다. 엄마가 며칠후에 나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잔돈은 나를 달라고 몇 번을 얘기하니.’

그때서야 망치로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나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보다도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더 오래 마셨다. 게다가 엄마는 담배까지 핀다.

엄마가 피던 담배는 88이었다. 지금은 88이 단종되어서 말보로로 바꿨지만, 나는 다른 담배는 몰라도 88의 냄새 하나만큼은 구분할 수 있었다. 내게 88 담배 냄새는 곧 엄마 냄새였다.

엄마가 마시는 커피는 항상 자판기 커피였다. 엄마는 지금도 항상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내게 잔돈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길을 걸어가다가 200원이나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기 위해서였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자판기에서 곧잘 따뜻한 음료수를 뽑아주었다. 율무차나 코코아, 가끔은 엄마가 먹던 자판기 커피를. 내가 처음 먹었던 커피는 엄마가 뽑아준 자판기 커피였다. 엄마는 행여나 내가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할까봐, 분유향이 듬뿍나는 자판기 우유와 밀크 커피를 한잔씩 뽑아서 이리 섞고 저리 섞으면서 더 달콤하게 만들었다. 겨울이었고, 털모자에 털목도리 털장갑을 낀 내가 그때는 왜 그리 커보였는지 모를 종이컵을 들고서 엄마가 타준 커피를 마실 때면, 참 겨울이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에는 찬바람에 빨개진 귓불도 차갑기보단 기분좋게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나혼자 작가 행세를 한다고 여기저기 커피값만 비싸게 버리고 다니는 기분이 들어 불효하는 듯 해 민망했다. 나도 최근에는 카페에 가는 횟수를 줄이고 편의점 커피를 마시러 다니기 때문에, 엄마를 데리고 가끔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뽑아 먹었다. 엄마는 편의점에서도 아메리카노를 뽑아서 마실 수 있다는 거에 꽤 신기해했고, 나중에는 곧잘 혼자서 여기저기 동네 편의점을 다니면서 맛도 비교해서 들려주었다. 내게는 항상 세븐일레븐 게 맛있다고 했는데, 나는 항상 CU가 맛있다고 해서 의견충돌이 났다. 사실은 나도 세븐일레븐 커피를 좋아한다. 이상하게 엄마랑 같은 취향이라고 하는 게 좀 민망했다.

엄마가 최근에는 말보로 담배를 내게 주면서 친구들 중에 담배를 피는 애들이 있으면 가져다 주라고 했다. 말보로 레드를 사야 하는데 누나가 오리지날로 잘못 사왔다고 하면서. 조만간에는 엄마에게 전자담배라도 사 드려야 할까 생각중이다. 88보다는 못하겠지만, 말보로 보다는 좀 덜 독한 걸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