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이라 하면 특정 피부색을 떠올린다. 백인과 흑인, 대조적인 피부 색만큼이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세상은 두 가지 피부색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간색인 황인종도 있다. 인종차별은 사람을 백인, 황인, 흑인으로 나누어 특정 인종에게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요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따져보자면 백인 이외의 인종을 묶어서 유색인종이라 칭한다. 이것을 약간 삐딱하게 해석해 보자면 결국은 백인 이외의 인종은 유색인종으로 묶어 차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색채에서 흰색과 검은색은 아무런 색도 없는 무채색이다.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하며, 아무런 색도 없는 무채색이다.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으로 색상, 채도가 없고 명도 차이만 있는 무채색이다. 흑과 백의 중간 어딘가는 회색이라 부른다. 회색 또한 흑과 백이 섞여 명도만 달라진 무채색이다.

사람의 피부 색상이 완전한 백색이거나 흑색은 아니지만 아마도 연상되는 인접 색상으로 불렀을 것이다. 굳이 ‘색’에 대입시켜 보자면 흑과 백의 중간색은 회색이지만 백인과 흑인의 중간색 피부에 해당하는 것은 황인종이며, 유일하게 유채색에 속하는 인종이기도 하다.

색상으로 구분하면 결국 흰색이나 검은색이나 채도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태로 빛이 반사되는 양에 따라 명도로 구분이 될 뿐이다. 하지만 색의 속성과는 상관없이 인간에게 적용된 피부 색깔은 편을 가르고 그것으로 서로를 차별한다. 옛날처럼 극단적인 인종차별이 줄어들었다 뿐 지금도 어디서나 차별은 존재한다.

같은 인종 따윈 관계없다는 듯 피부색은 같아도 다른 나라 사람이라서,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사는 지역이 틀려서, 사는 지역이 같지만 직종이 틀려서, 직종은 같지만 성별이 틀려서 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차별’ 은 너무 다양하게 존재한다.

내가 속한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황인종이라는 이유로 백인종에게 차별을 당해서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흑인종을 차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아시아 계열 황인종이라도 우리나라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무시한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심각했다. 이것은 백인 국가에 일하러 간 황인종이나 흑인종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것은 경제적인 우위에 있는 그룹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낮게 생각하는 그룹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형태이다.

이런 형태의 차별은 결국 ‘갑질’이라는 괴물 문화를 만들어 냈다.

대기업이 하청기업에 불공정한 계약 등 대규모 갑질을 하는 것부터, 대기업 임원이 고용인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뉴스 기사는 한 두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꼭 대기업만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는 직책의 상하 관계로 인한 갑질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내면화되어 있다.  고객이 직원에게 갑질을 하거나, 심지어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갑질 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다.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제가 갑질을 했네요.’라는 글을 보았다. 당시에는 자신에게 뭐라고 하는 것에 당황스럽고 화가 나서 상대방에게 큰소리로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자기 잘못도 있는데 순간 화를 참지 못해 결과적으로 갑질을 했다. 상대에게 찾아가 사과를 했고 다행히 상대방도 웃으며 넘어갔다는 내용이었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 짓고 차별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받는 차별에 대해서는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번에 다루었던 영화 ‘그린 북’에서 흑인인 돈 셜리가 백인인 토니에게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나는 평생을 그런 취급을 받았는데 당신은 어찌 하루를 못 참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차별을 하고 있으면서도 역으로 누군가 자신을 차별하면 참지 못하고 기분 나빠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대부분의 보통 사람일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사람의 기본적인 방어수단이자 본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인격체이고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그 순간을 참아낼 수도 있고, 설령 참지 못하고 실수를 했더라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것을 만회하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