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쓴다.

쓰다.

그 맛은 입가에서도 느껴지고 마음에서도 느껴진다.

기분에서도 느껴지며 영혼으로도 느껴진다. 인생이란 게 그리 달콤하지 않도록 우리를 설계한 존재는 누구일까.

달콤한 인생이란 영화 제목이 있는 걸 보면 인생이 달콤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영화를 봐도 달콤한 건 한 순간이고, 그 순간 때문에 달콤하지 않은 상황을 99% 견뎌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다룬다. 설마, 제목만 보고 이야기가 달콤하게 흘러간다 생각한 사람은 없겠지. 그러면 참 순진한 거고. (아, 순수한건가?)

그렇게 인생은 쓰다. 사람에게서 받은 아픔, 직장에서 받은 상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달콤함에 잠시 취할지라도, 태생이 불안한 인간의 삶은 그렇게 고달프다.

쓰그래서 난 쓴다.

마음에 묻은 쓰디쓴 그 맛을 씻어내려고.

아무리 샤워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 쓰디쓴 맛은, 글을 씀으로써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다. 글을 쓰는 건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돌리는 것과 같다. 무수한 영감과, 생각들. 샤워기를 통해 나오는 물줄기와 같아, 그렇게 몸이 아닌 마음은 쓴 맛을 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문장으로 이어나가야 하는 야릇한 두려움. 나쁘지 않은 부담감. 생각보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이면, 달콤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 인생이 이리 쓰기에 글을 쓸 수 있구나. 글을 쓸 수 있기에 난 달콤함을 느낄 수 있구나. ‘자기 합리화’와 ‘자아실현’의 어느 중간에서 난 늘 서성인다.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쓰는 내게 사람들은 작가가 되어 회사를 곧 관둘 거냐고 묻는다.

아니다. 나는 회사를 끝까지,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다닐 거다. 인생은 쓰지만, 직장생활은 더 써서 자꾸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니까. 아주 달콤한 인생을 꿈꾸게 하니까. 그래서 떠오르는 게 많으니까.

그래서 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로 풀어요. 그래서 글을 아주 많이, 자주 쓰죠.”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은 것도 쓴 맛을 봤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마음을 샤워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론, 글쓰기가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느 것보다도 효과적이다. 위로가 되면서도 경제적이다. 몸에 무리를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참 좋다.


몸에 좋은 건 쓰다고 했던가.

맘에 좋은 것도 그런가 보다.

어찌 되었건, 퇴근 후에 지쳐 그저 잠들까 하다가 이렇게 글이란 걸 쓰고 있으니.

앞으로도 난, 인생이 쓰면 글을 써야겠다. 계속해서.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