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

 

벚꽃 연금을 받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면, 어김없이 봄은 삶의 어귀에 와있다.

그 노래에 어울리는 꽃으로 둘러 싸인 사무실 밖은 분주하다. 꽃보다 많은 사람들은 모여들고, 저마다의 추억을 저장하느라 바쁘다. 누군가는 손을 꽉 잡고 걷고, 또 누군가는 그 손을 잡을까 말까를 고민한다. 사랑을 시작하기에, 사랑을 좀 더 깊게 하려는데 이만큼 좋은 때가 있을까? 벚꽃 연금이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봄은 마음에 와야 한다.

눈이 아닌 마음에 와야 그제야 꽃이 보이기 때문이다. 벚꽃에 둘러싸인 건물에서 일하는데 내 머릿속엔 그것을 본 기억이 없다. 잔상마저 없는 걸 보니, 꽃이 아직 안 피었을지도…라고 생각하지만 나와는 상관없이 그 가련하면서도 아름다운 봉우리는 끝내 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엑셀과, 현란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숫자들은 마음의 여유를 허하지 않는다. 그 숫자에 울고 웃는 사람들은 저마다를 바라보느라 꽃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맞고 네가 틀렸다고 하거나, 네가 맞지만 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힘겹게 증명하느라.

어두컴컴할 때 퇴근을 하는 것도 한몫한다.

어두워지면 사람은 귀소본능이 더 강해진다. 주변을 보기보단, 집으로 가는 좀 더 빠른 길을 모색한다. 낭만이란 건 없다. 그저 빨리 들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잠시 보고, 침대로 점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힘든 직장생활에 그나마의 위안이다.

나는 누군가, ‘마음의 여유’와 ‘돈의 여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서슴 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가지고 있어도 누리지 못하느니, 없어도 누리는 삶이 더 실속 있다. 물론, 나는 그 둘을 원하고 있고 그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에 지금과 같이 벚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알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생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도, 나는 또 내일 마음의 여유 없이 하루를 보낼 것이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여유가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아무리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꽃은 핀다. 내 마음의 여유는 자연법칙에 관여를 하지 못한다. 자연법칙에 의해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 더 현실 적이다.

두고 보겠다.

대체, 나에겐 언제 마음의 여유가 올 지.

대체, 봄은 언제쯤 내 마음에 다가올지도.

봄이 오기 전, 이렇게 살아내는 스스로를 격려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봄은, 좀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