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만 해도 화사함을 자랑하던 벚꽃나무는 어느새 꽃잎을 절반 이상 떨어뜨리며 다가올 여름을 앞서 기다리는 것 같다. 남쪽 지역이라 개화 시기가 빨라 꽃망울을 일찍 터트린 만큼 빠르게 져버리니 그 순간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4월에는 들판을 노란빛으로 물들여줄 유채꽃이 피어나 어서 나와보라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는 튤립, 5월의 장미는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화려함과 향기로 우리를 유혹하며 오래도록 피어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다.

봄이 시작됨을 시각적으로 알리는 것이 꽃이라면 봄나물은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어릴 적 봄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우리 집 식탁이었다. 꽃샘추위도 가시지 않아 아직 서늘한 날씨에 어디서 구하신 건지 밥상에 쑥국이 올라왔다. 추운 겨울 움츠러든 몸을 깨우고 춘곤증을 이겨내려면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많은 종류는 아니지만 봄나물 몇 가지를 챙겨주셨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쑥국이다. 어린 입맛에 나물 무침은 쓴맛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쑥국은 쑥의 특이한 향과 맛에도 신기하게 자꾸만 손이 갔다.

그 시절 살던 집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도 근처에 목장이 있었다. 그때 초등학생은 지금만큼 학원을 많이 보내지 않았고 하교 후 시간이 많았다. 딱히 놀 거리가 없을 때는 동내 친구들과 목장으로 놀러 가곤 했는데 봄이 되면 목장의 들판에 쑥이 참 많았다. 수많은 들풀 중 쑥은 모양과 향으로 비교적 쉽게 구분이 가능했다. 거기다 그맘때 항상 봄나물을 캐러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있어 물어보면 알려주시기도 했다.

들판에서 쑥을 발견한 다음날이면 친구들은 맛있는 쑥국이 생각나 한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쑥을 캐러 가곤 했다. 떡을 좋아하던 한 친구는 떡에는 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커다란 봉지에 가득 담아 갈 거라며 더욱 열심히 쑥을 캐내기도 했다.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열중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렸다. 해가 저물기 전 한 봉지 가득 채운 쑥을 들고 집에 돌아가 맛있는 쑥국을 기대하며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몇 해가 지나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과 목장에 가서 쑥을 캐는 일은 줄어들었고 곧 목장도 없어졌다. 그곳에는 다른 건물이 지어졌고 늦어진 하교 시간과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봄이면 쑥을 캐러 가는 일 같은 건 없어졌다. 단지 식탁에 올라온 쑥국을 먹으며 가족들에게 ‘어릴 때 내가 쑥 캐와서 국 끓여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하는 정도였다.

최근 우연히 친구 언니의 텃밭에 방문하게 되었다. 도시 외곽의 가까운 곳에 땅을 사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었는데 밭 주변으로 쑥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언니는 마침 잘 왔다는 듯 쑥이 한창이라며 시간이 되면 너도 좀 뜯어가라고 하셨다. 얼마 전 맛보았던 향긋한 쑥국이 생각나 팔을 걷어붙이고 즉흥적으로 쑥을 캐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나니 다리가 저리고 허리도 뻐근해졌다. ‘어릴 때는 다리 저린 줄도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씩 있었던 것 같은데’푸념을 하니 언니가 ‘동생이라 모르겠더니 너희도 같이 나이 들어 가네’라며 웃었다.

재미난 것도 별로 없던 시절 ‘쑥 캐기’는 나름 재미있는 놀이였다. 문득 요즘 애들도 이런 소소한 재미를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학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또래 아이들이 모두 유사한 패턴이라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하는 놀이터는 텅 비어 있고 친구라도 사귀려면 어디든 보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것저것 하느라 너무 바쁜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시대가 급변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것이라지만 커갈수록 복잡한 세상에 적응하느라 바빠질 것을 생각하니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다.

어릴 때야 아무 생각 없이 재미로 쑥을 캐곤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온전히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자연과 하나 되어 나물을 캐는 행위는 나를 속박하던 전자기기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나름의 집중력이 필요하면서도 그 순간 복잡했던 머리를 잠시나마 비워주었다. 오히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세대들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