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디테일에 약한 사람이다. 소위 말하자면 ‘꼼꼼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누군가의 생년월일을 외우고, 그래서 생일을 외우고, 생일 선물을 챙겨주고, 누구와 누구의 나이가 지금 현재 몇 살이고, 그래서 누가 누구보다 나이가 많고 적고 서열 정리가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기념일은 언제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등…

나는 이런걸 잘 외우거나 숙지하지를 못한다.

어느순간부터 나는 사람들의 나이를 외우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를 기준으로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같거나, 많거나 세 부류의 사람만 있을 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2명 이상이 있으면 그들 중에서 누가 나이가 많고 적고는 나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 모두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 뿐, 그뿐이다. 이는 나이가 나보다 적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군대가 너무 힘들었다. 모두의 나이를 다 외워야 하고, 모두의 군번을 다 외워야 하고, 그래서 일렬로 줄을 쫙 세워서 누가 누구보다 군번이 높고 낮은지, 그래서 누가 뭘 시키면 압존법을 써야 하는지. 내게 군대가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평생 관심도 없었을 남의 나이를 줄세워서 외워야 했던 그 기억이 한 몫 하고 있다.

누군가의 생일을 외우는 것도 그래서 굉장히 귀찮아한다. 일단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나는 나의 생일조차 잘 까먹고 챙기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생일이 2개인데 하나가 양력, 하나가 음력이다. 양력 생일은 친구들끼리나 챙기는게 보통인데 사실 1월 1일이 생일이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이 내 생일을 챙겨준다기보다는, 그저 신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겸사겸사 생일 축하를 받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음력 생일은 매년 바뀌기 때문에 매년 체크를 해야 하는데, 나는 내 생일이 전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축하를 받을 생각도 없는 고로, 1년에 1번 신년에만 체크를 하고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다 정말 잊어버린 적도 많다. 한 생일을 맞기 3일 전쯤에 엄마가 가족들과 식사를 해야하니 주말을 비우라고 했을 때, 내가 왜 그날 시간을 비워야 하냐고 묻고 그날이 내 생일이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알아차렸던 적도 비일비재했다.

내게 생일은 그저 수많은 날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생일이 내게 특별하지 않은 이유는 정말로 그날이 내게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들과의 식사는 그저 귀찮을 뿐이지만 가족들과의 친선을 도모하는 1년에 몇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3명 이상 모인 북적거리는 자리를 굉장히 피곤해하는 나는 이제 생일이랍시고 친구들을 전부다 불러모아서 파티를 열거나 어딜 가거나 하는 것도 끊게 되었다. 자연스레 생일이라고 뭔가를 꼭 선물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산지가 오래 되었다. 이제는 가지고 싶은 것도 몇 없고, 그저 내 인생의 목표가 내가 내돈 벌어서 내 한몸 건사하는 ‘자립’이 된 마당에, 누군가에게 뭘 꼭 받아서 축하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심지어 그런 날에 다같이 모여서 피곤하고 재미없는 친목과 우정을 도모한다거나 하는 게 의미가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제는 거기다가 생일이랍시고 꼭 모이거나 하기도 힘든 나이가 되었다. 과거에야 누군가가 생일이라면 시간을 빼고 날을 맞춰서 다같이 얼굴 한번 보고 밥한끼 먹고 뭐라도 함께 놀고 즐기는 것이 친구들 모두에게 ‘가능’했다면, 이제는 누군가가 생일이라고 해서 꼭 스케줄을 뺄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어지는 나이이다. 누군가의 장례식이라면 모를까 누군가의 생일은 모두를 한꺼번에 불러모으기에는 어느새 희박해진 명분이다.

나는 그래서 언제든지간에, 친구들과는 굳이 어떤 계기가 없더라도 서로가 시간이 맞으면 어디서든 만나 뭐라도 할 수 있는 걸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느날 문득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을 때 서로 한가하다면, 또는 지나던 동네 근처였다면, 만나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문득 연락을 해서 일주일 뒤에 시간이 빈다면, 같이 차를 타고 여행을 1박 2일 떠날 수 있고, 갑작스레 새벽에 전화해서 잠을 자고 있지 않다면, 다같이 모여있는 친구의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회포를 푸는, 그런 시간들.

자연스레 내게는 1년 365일 모든 날이 기념일이자 생일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날들이 되었다. 내게 기념일과 생일이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는, 사실 나머지 모든 날들도 기념일과 생일만큼이나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는 것은, 사실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런 내 성격은 연애를 할 때도 이어졌는데, 기념일이나 생일을 별반 특별하게 챙겨주지 않았던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했다.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내가 정말로 엄청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사실 느끼게 되었다라는 말조차도 너무 방어적인 말일지 모른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나는 연애 상대로서는 최악이다. 나의 일상이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일상도 그러할거라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내 인생의 생일이나 기념일이 너무나도 부질없게 느껴지는 나머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항상 뒷전이 되고 만다.

아, 생각해보니 정말 특별하게 행복했던 생일이 하루 있기는 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한 일주일 전이었나. 정확히 내 음력 생일이었고, 이미 입대한 친구들이 많고,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절연을 한지 오래고, 대학교 친구들은 다 각자 지방에 있었던 시기라, 아무도 만날 약속따위 없었던 나는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오후 1시께에나 잠에서 깼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처럼 억수같이. 비오는 날을 워낙 좋아하던 나는 멍하니 일어나서 베란다 창으로 비 오는 창밖 거리를 한참이나 감상을 했다. 물을 한잔 마시고 TV를 틀자, 내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중경삼림>이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틀자마자 오프닝 첫장면이었다. 당연히 잠에서 깨자마자 누운 자리에서 빗소리와 함께 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봐 버렸다. 영화가 끝날 때 엄마가 집에 왔고, 나는 엄마와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는 씻고 동네 단골 카페에 갔는데,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잤다.

그저, 그랬던 하루였는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생일이라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행복했던 날이었는데, 하필 생일이어서 기억에 더 남을 뿐이다.

나는 언제서부터 이렇게 나만 아는 무던한 나쁜 새끼였을까?

기억하기로 나는 어렸을 때 싫어하는 형용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꼼꼼하다’ 라는 말. 왜냐면 유치원에서고 초등학교에서고 어른들이 나를 혼내거나 누나 혹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지적하면서 하는 말이 ‘동욱이 너는 정말 꼼꼼하지가 못해’ 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살면서 한번도 ‘꼼꼼하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유는 역시 내가 안 꼼꼼하기 때문이고, 뭣보다 난 내가 꼼꼼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꼼꼼해야 될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유치원에서 태양을 그리거나 집을 그리면 꼭 색칠을 해야 했는데, 나는 색칠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치킨을 먹을 때 손에 양념 묻는게 싫어서 어떻게든 젓가락으로든 포크로든 숟가락으로든 진상을 떨며 도구를 쓰려는 나인데, 크레파스가 손에 묻어나는 게 좋을 리가 만무했다. 그저 빨리 대충 윤곽선을 그리고 안에다가는 웃는 햇님 얼굴이나 하나 그리면 그만이었다. 색칠을 하라 그러면 또 어떻게 채워넣기는 했는데, 나는 정말 지금도 그렇지만 단순 반복 작업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단순하게 반복하는 일을 3분 이상 하고 있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뒤집어엎고 싶어지는데(참고로 극작이나 글을 쓰는 창작 일은 전혀 단순하지도 반복되지도 않는 작업이다), 도대체가 그 크게 그려놓은 나무나 배, 햇님같은것의 안쪽을 색을 ‘꼼꼼하게’ 칠해넣어야 하는 단순 반복 작업을 왜 해야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서 내가 공부하는 것도 외우는 것도 싫어했나보다. 더럽게 단순하고 반복적이니까. 그리고 그래서 내가 세계사랑 문학을 좋아하고 잘했나보다. 이야기라서 단순하지도 반복적이지도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대충 어거지로 똥씹은 표정으로 손에 뭐 묻히기 싫어하면서 답답함과 책상을 뒤집고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을 달래가며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를 북북 대충 그어대고 있으면, 유치원 선생들이 와서 꼭 한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얘는 어쩜이리 꼼꼼하지가 못할까. 얘 누나는 정말 꼼꼼한데 말이지.”

아니 뭐 도대체 어쩌라고.

나이가 들면서 만들기나 공작 같은 것도 그러했지만, 숙제를 하거나 일처리에 있어서도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면 그냥 넘어가버리곤 했다. 당연히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기를 쓰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짚어내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말 대충 넘겨버렸다. 예를 들어서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수학숙제로 문제를 풀어오라고 했을 때 나는 그냥 번호만 쓰고 그 바로 옆에 답을 써서 제출했다. 무지막지하게 싸대기를 맞고 발바닥을 맞고서 정말 맞아서 사람이 죽겠구나라는 공포를 느낀 이후에, 선생이 시키는대로 문제를 전부 받아쓰고, 문제의 풀이를 전부 쓰고, 문제의 증명 과정까지 전부 써서 꼬박꼬박 제출해야 했다. 그전까지 풀 줄만 알면 답을 알면 그냥 답만 써버리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마인드로 살았는데, 이후에는 ‘맞아 뒈지기 싫어서’ 그렇게 해야 했다. 무슨 수학의 심오한 신비를 깨닫기 위해 정말로 정석적으로 그렇게 했던 게 아니라, 정말로 ‘맞아 뒈지기 싫어서’.

맞아 죽기 싫어서 시작한 꼼꼼함이 오래 갈 리가 없었다. 학년이 바뀌고 수학선생이 바뀌면서, 그전에는 좀 쳐다라도 봤던 수학을 이제는 아예 놔 버렸다. 내게 수학선생이 바뀐건 수학을 합리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계기가 아니라 그저 ‘고통에서의 해방’ 이었다.

친구 중에 참 꼼꼼한 사람이 있다. 모든 주변 인물의 생년월일을 다 외우고, 이름조차도 한번 들으면 거의 외워버린다. 누가 누구보다 나이가 많고 적은지 서열 정리화가 척척 되어 있고, 누군가 생일을 맞으면 귀신같이 축하를 하고 선물을 사서 보낸다. 작은 것일 지라도. 편지도 쓴다. 나는 언젠가부터 편지도 귀찮아서 쓰지 아니했다. 아, 그런데 난 도대체 편지는 왜 귀찮아하게 된 것일까?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는 편지도 참 많이 썼는데.

디테일을 잘 챙기는 건 타고나는 것인지, 훈련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참 디테일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고나게 디테일한 사람을 보면 참 부럽기도 하다. 나는 참 꼼꼼하지가 못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