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서울 문화 재단에 신청한 최초예술지원 창작준비금이 통과가 되었고, 그후로 거의 반년동안 공연을 준비하고 내일이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다. 굉장히 힘들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연극을 하면서 처음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꽤 오래전, 내가 아직 20대 중반일 때에 만났던 연상의 직장인 여자친구는 항상 일을 하면서 그만두지 못해 안달을 내고 괴로워하면서 찡찡댔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직업이 적성에 안 맞으면 다른 직종으로 바꾸는 걸 고려해보라고 말을 했다. 남의 일이니까 쉽게 이야기할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당시의 그녀는 능력이 아주 좋은 편이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라도 이직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었다. 이미 헤드헌팅이 한달에도 한건 이상 씩은 들어오던 사람이었으니.

그녀가 살면서 가장 힐링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는 다름아닌 ‘만화 보기’ 였는데, 나는 하다못해 만화카페 같은 자영업은 못해도 당시에 핫하게 뜨고 있었던 유료결재 웹툰 회사들에 취업해보라고 몇 번 이야기했었다. 그때 한참 주가가 오르고 있던 회사가 바로 ‘레진 코믹스’ 였다. 비록 지금이야 이런저런 이슈 이후에 초창기의 광폭행보와는 대비되게 살짝 위축된 모습이지만, 당시의 레진 코믹스는 웹툰 시장에서 다음과 네이버의 독점적 구도에 거의 금을 내 가며 단숨에 뜨거운 감자로 올라선 회사였다. 웹툰 <나쁜 상사>를 레진에서 연재하고 네온비 작가가 받은 순이익이 2014년 기준으로 연매출 4억이었다.

그녀도 내 아이디로 레진 코믹스의 만화를 보고 있었고, 충분히 매력적인 회사로 느끼고 있던 터였다(지금의 레진 코믹스가 어떤지는 차치하고서). 그런데 그녀는 그럴 때마다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절대 아니’ 라며 두 번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를 않았다. 하루는 또 그녀가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리길래, 도대체 좋아하는 일이 인생에서 그리도 명확하고 능력도 있는데, 왜 좋아하는 분야로 이직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느냐며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이 이랬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돈버는 일이 되면 싫어지게 마련이야. 나는 만화 보는 게 너무 좋고 이게 싫어지는 걸 원치 않아.”

글쎄. 나는 그때에는 별로 동의할수도 동감할수도 없었다. 일단 그녀의 경험에서 딱히 우러나온 이야기 같지도 않았었다. 그녀가 한번도 뭘 좋아했었는데 그게 돈버는 직업이 돼서 싫어졌다는 말을 한적은 없었다. 내가 알기로도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기도 했다.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회생활을 그리 오랜 기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그날 이후로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뭔가를 엄청 좋아하는데 질리고 싫어질뻔한 적은 한번 있었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우고나서 1년이 갓 지났을까. 실력이 늘어가는 재미도 재미였지만, 어느순간 정말로 탱고 자체에 푹 빠지게 됐었다. 일주일에 이틀 나가던 수업을 3일 나가게 되고, 3일 나가던 걸 4일을 나가게 되고,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새 주6일 탱고 수업을 나가고 있었다. 정확히 월요일만 쉬면서 화수목금토일을 전부 탱고를 추면서 살고 있었다. 거기다 일요일엔 밀롱가 스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월요일 새벽 2시에서 3시, 월요일은 자고 쉬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또 화요일부터 탱고 시작. 거의 쉬는 날이 없는 삶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하다보니 정말 잠과 밥을 줄여가면서 탱고를 하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내 컨디션과 건강을 헤쳐가면서. 더군다나 정말 욕심으로 탱고를 잘추고 싶어서 일주일에 6일을 수업을 다니다보니, 투자한 시간만큼 실력이 늘지 않을 때마다의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러다가 어느날, 정말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 탱고 가기 싫다. 그냥 때려칠까.’

문득 그때의 나를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랬었다. 그때 딱 깨닳았다.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나는 분명 탱고를 때려치우고 다시는 이쪽으로 돌아올 일이 없을 거라는 걸. 그때부터 다시 차근차근 수업도 파티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주3일에서 4일 정도로 유지하는 게, 탱고에 대한 내 애정을 유지하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이라는 걸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뭐든 참 적당히가 중요한 법이었다.

사실 탱고는 단한번도 나에게 일이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일을 하는 것과 준하는 스트레스였기에 그게 질리고 싫어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사실 이 말도 아이러니한 게, 세상 모든 일이 그런 식의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일’이란 게, 그러니까 ‘노동’이란게 얼마나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 되었는지를 이렇게 돌고돌아 알 수 있을 뿐이다.

나는 탱고가 일이어서 싫어졌던 게 아니었다. 탱고를 하면서 ‘수면’, ‘식사’, ‘건강’, ‘그 외의 사생활’ 등에서 큰 균열이 벌어졌기 때문에 싫어졌던 것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그녀도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가 ‘일’이 된다고 해서 싫어졌을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화가 어느순간 자신의 ‘수면’, ‘식사’, ‘건강’, ‘그 외의 사생활’ 등을 망치기 시작했을 때, 만화가 싫어지리란 것을 말이다.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는, 반년 동안 정말 착실히도 망쳐왔었다. 자고, 먹고, 컨디션, 그리고 다른 아무런 것들 모두를 말이다. 스탭진도 충실히 꾸리지 못했었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문제는 난항을 거듭했으며, 페이도 주지 못했으면서, 내 개인 돈은 엄청나게 지출을 했다. 돈 관리를 할 사람도 없어서 내가 스스로 했고, 투자자이면서 기획에, 작가이면서 연출에, 캐스팅에, 홍보 마케팅 아이디어도 내고, 그와중에 다른 공모전 어디 낼 데 없나 기웃기웃거리기까지…

사실 지금도 내일이 마지막 공연이지만 전혀 어떤 감동적인 회한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장 내일만 해도 마지막 공연 전에 나는 앞에서 티켓팅을 도와야 하고, 들어가서는 마지막 공연의 실황 촬영을 지휘해야 하고, 관객들을 안내해야 하며, 공연이 끝나면 와 준 지인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곧바로 극장 스트라이크에 들어가야 한다. 스트라이크가 끝나면 짐을 다 싣고 집으로 와야 하고, 그 다음에는 다같이 예약해둔 회식장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직 회식장소를 예약을 안해놨다. 회식 장소는 또 1차는 삼겹살 정도는 먹어야 할텐데 몇 명이 가고 얼마가 나올지… 정산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계좌안에 돈이 들어가고 나간 흔적이 뒤죽박죽이라 도저히 정리는 안되는 상황이고, 추가로 내야 할 공모전이 있으니 나는 또 아침까지 그 작업을 하다가 몇 시간 잠을 못 잘 것이고…

내가 내 공연에 대해서 어떤 감상적인 기분에 잠길 시간이 정말 전혀 존재하지가 않고 있다. 아마 끝나고 나면 어떤 회한이나 후회, 추억 같은 기분이 뒤늦은 파도처럼 밀려들어와서 한번 휩쓸고 싹 지나갈 것 같다. 그저 그것 뿐일 것 같아서 더 씁쓸할 뿐이다. 얼른 연극이 끝나고 좀 쉬면서 일기를 쓰고 운동이나 좀 하고 싶다는 게 지금 드는 거의 유일한 생각일 정도이다.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처음으로 ‘행복하지가 않다’ 는 감정이 들었다고 앞서 이야기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을 하면서 많은 순간들 정말 단순히 해야되니까 하는 어떤 ‘일’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좋아하지 않는데도 해야하는 일. 하면서 자부심을 전혀 느낄수 없고 오히려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 잠을 줄여야 하고, 줄인 잠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이 힘들어 끼니를 미뤄야 하고, 건강을 헤쳐가면서도 휴식은 절대로 하지 않고 커피를 들이붓고, 이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일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활동이나 사람을 만나는 행위는 할 수가 없고…

내게 언제부터 연극이 이런 것이었는지 회의감이 막심했다. 아니, 그전에 도대체 헬조선에서는 왜 일이란 게 자동적으로 ‘이런 것’ 인 건지 모르겠다. 문득 인터넷의 누군가가 유럽의 68세대는 투쟁 끝에 ‘놀 궁리’를 하고는 1년에 1달에서 2달이 되는 장기 휴가권을 쟁취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었고, 한국의 586세대는 투쟁 끝에 ‘돈 벌 궁리’를 하고는 사회의 기득권과 경제적 상위계층을 모조리 가져갔다는 글이 기억이 났다.

장기 휴가도 있고 심지어 여름에는 더워서 씨에스타라고 공식 낮잠시간까지 있는 스페인에 가보니 정작 일 자체도 열심히도 안하고, 덥다는 여름도 헬조선 불지옥 같은 더위에 비하면 정말 양반인 나라였다. 아… 이런 나라도 놀 궁리에 바쁜데, 한국인들은 왜 놀 궁리도 눈치봐서 휴가 한번 결재받고 그게 통과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하게 되는 것인지. 한달짜리 장기휴가가 필요한건 그야말로 한국의 노동자들인데 말이다.

매순간이 휴가인 연극인의 삶이어서 지난 반년의 지옥같은 프로덕션도 감지덕지하면서 고마워해라, 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원금 빼고도 내 사비가 얼마가 들어갔는지를 알면 그런 말은 못하리라. 그리고 연극인들이 매일이 휴가인 건 맞지만 어디 놀러가서 휴가인 게 아니라 단순히 일이 없어서 일을 구하고 다니느라 휴가인, 말이 휴가지 휴가도 아닌 그런 휴가인 것이다. 친구들끼리 연극한번 해보려고해도 돈을 벌어야 되고, 어쩌나 여행이라도 가려고 해도 돈을 벌어야 되고, 결국엔 돈은 따로 벌고 본업에든 노는데는 따로 돈이 들어가는 이 피곤한 인생에 휴가가 필요하지 않다면, 도대체 대한민국 어느 직종에 휴가가 필요하겠는가.

아무래도 이번 연극이 끝나면, 휴가가 필요할 것 같다. 아주 길고 찐한 휴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