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가 부담스러울 때

 

글쓰기는 분명 나에게 행복이다.

어쩌면 구원과도 같다. 살다 보면 무엇하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가 있는데 대개는 그러한 때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이겨내고 싶을 때고, 나는 비로소 글쓰기로 그 위기를 모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과 차원이 달라진 눈, 의도치 않게 그러면서 분에 넘치게 출간된 나의 책들은 또 하나의 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내일도 쓸 것이고, 그다음 날도 쓰려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이긴 하나, 행복을 둘러싼 모든 것은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사람은 그 굴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우주 안에 속한 지구에서 살고 있고 중력과 자연의 이치를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리네 삶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마냥 자유로운 것 같다가도, 한 없이 초라해지고 주변이 답답해지는 이유다. 그러니 글쓰기는 나에게 구원과 같으면서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 생각할 때.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내 머릿속이나 마음을 열어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고 어디엔가 남기는 작업이다. 그것이 고결해 보이나, 나중에 읽는 일기가 낯 뜨겁고 낯선 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지인이 내 글을 보며 그때 마음이 이랬어?라고 물으면 혼잣말을 하다 들킨 기분. 물론, 표현을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얻어내는 일종의 관심병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인데, 때로는 그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영혼까지 뒤집어 표현을 해내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정작 그것들은 순살이어서 누군가에 의해 살짝 닿기만 해도 따끔거리는 모양이다.

둘째, 좋은 영감이 떠올랐는데 그게 잘 표현이 안될 때.


글을 쓰고 나서 좋은 점은 아주 멋진 그레이트하고 원더풀한 영감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샤워를 하다가, 음악을 듣다가, 일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그 영감은 떠오르고 또 떠오른다. 그것의 휘발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기에 나는 영감이 떠오르면 무조건 메모를 한다. 때로는 단어 하나, 또 때로는 훌륭한 문장 하나로. 그 문장 하나가 제목이 되어 술술 풀리며 써내려져가는 글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로망이자 짜릿한 쾌감이다. 하지만, 멋지게 떠오른 그 영감이 제대로 글로 표현되지 않거나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글의 중간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길을 잃어 방황할 때 그것은 찌릿한 불쾌감이 된다. 고구마 100개를 먹고는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느낌.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해, 글쓰기가 갑자기 두려워질 때마저 있다.

셋째,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책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들 때.


나는 운이 좋게도 책 세 권을 냈고, 모두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돌아보면, 꾸준히 ‘글’을 썼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즉, 책을 내려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두권 책이 나오다 보니, ‘글’이 아닌 ‘책’을 쓰려는 겉멋이 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예 작정하고 목차부터 써 내려간 아주 좋은 아이템은 여전히 책으로 출간이 안되고 있다. 아이템이 좋으니, 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지만 결국은 그 아이템은 채택이 안되고 그냥 써왔던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게 된 것이다. 마치, 친구 따라 오디션에 갔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내가 덜컥 되었다는 미담과 같이. 그러니, 나는 책이 아닌 글을 써야 한다고 오늘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넷째, 그래서 인세가 얼마냐고 물을 때.


안다. 나도 그랬다. 책을 낸 사람이 있으면 인세가 얼만지 궁금해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세 권 출간하고 나니 사람들은 이미 내가 돈방석에 앉았다고 생각한다. 노후가 해결되었으며,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한다. 간절하게 내 이름이 표지에 적힌 책 한 권을 내고 싶던 예전의 나를 돌아볼 때,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었다. ‘용돈벌이’가 딱 알맞은 대답이지만, 때로는 그냥 웃고 만다. 언젠간 정말로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안 그래도 강의할 때마다 월급보다 인세가 더 많아지면 직장을 그만둘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단호하게 “NO”라고 이야기한다. 인세와 상관없이, 나는 직장을 끝까지 다닐 참이다. 아프지만 성장함을 느끼고, 치사하고 더러울 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치밀하고 묵직해지기 때문이다.

다섯째, 내가 든 예시를 구체적으로 물을 때.


약간, 첫 번째와 같은 케이스다. ‘직장내공’이라는 자기계발서에는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것에서 배운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어 놓았다. 지인, 특히 우리 회사 사람들 몇몇이 (고맙게도) 책을 읽고 나서는 (이건 고맙지 않게도) 자꾸 그 사례에 나온 사람이 누구 아니냐고 묻는다. 그저 웃어보지만, 그 웃음이 어찌 자연스러울까. 또 물어보는 족족 딱딱 들어맞는 그 사람들의 이름은 나를 바짝 긴장시킨다. 생각을 돌이켜, 혹시라도 읽는 입장에서 나쁜 감정이 생기진 않을까 하지만 이미 종이 위에 잉크는 말라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계발서’에 출연(?)한 자신을 그래도 조금은 반가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그 사람들이 그러하기를 천지신명께 기도해본다.


글쓰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 분명하다. 요즘은 글쓰기로 숨을 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언제 글을 그렇게 쓰냐고 묻는다. 일을 하는데 시간이 남냐고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스트레스받을 땐 글을 씁니다. 그러다 보니, 글이 엄청 많이 써져요!”

솔직한 심정이자, 시간이 남아돌아 글을 쓰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부담스러운 일이 있어도 글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부담스럽다고는 했지만, 나는 다른 이의 눈치를 보기보단 내 눈치를 보며 글쓰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나는 고결하고 순결하게 내 속을 비워 내는지, 진실함을 토대로 생각을 풀어내는지, 본분에 충실하며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면서. 그렇게 마음속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햇볕이 쨍쨍하거나… 계속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