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번씩은 꼭 돌아오는 1년에 하루 주인공이 되는 날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주인공을 위해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선물을 건네며 축하한다. 어린 시절에는 매일매일이 생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한 달 전부터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사달라고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며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예전만큼 커다란 기대감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생일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는 행복한 날이다. 이렇듯 ‘생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대부분 즐거움, 기쁨,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즐거운 날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생일의 대상, 주인공이 없다면 어떨까? 축하해줄 당사자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즐거웠던 그날은 과거로 남아버린다. 현재의 그날에 더 이상 기쁨이나 즐거움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당사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영화 ‘생일’은 특정 사고를 배경으로 담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세상을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였다. 단순히 슬픈 가족 드라마 정도로 생각하고 보러 갔었고 영화 소개서를 보고서야 5년 전의 충격적인 사건이 배경임을 알았다. 영화의 배경을 알고 나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가 벌써 영화로 제작되었나라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이야기가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이런 우려와 달리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잔잔한 작품이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조심스럽게나마 풀어보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지루할 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담아낸 느낌이었다.

4월 1일은 가벼운 장난이나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만우절이다. 16년 전 만우절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투신했던 호텔 앞은 그를 추도하는 꽃다발과 화환으로 장식된다. 이제 4월 1일은 만우절이기도 하지만 장국영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안타깝게 떠나간 유명인들이 있고 해마다 그날이 되면 팬들의 추모가 이어진다. 유명인의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생일이 살아있는 동안에 한 사람의 특별한 날이라면 그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는 떠나간 날이 그를 기억하는 날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좀 더 일상으로 밀접하게 들어와 내 주변의 가까운 누군가가 떠났다면 당분간은 매일매일이 슬픔으로 가득할 것이다.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고 그 슬픔은 아주 조금씩 희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떠나간 이와의 특별했던 순간의 기억은 불현듯 찾아와 그 슬픔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준다. 특히나 생에 그가 주인공이었던 날이라도 되면 그동안 애써 담담하게 눌려온 감정은 걷잡을 수없이 터져 나와 버린다. 사실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슬픔과 싸우며 애써 담담한 척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큰 사건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전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감정이겠지만 함께한 날이 많았던 가까운 사이였을수록 남겨진 이들의 고통은 더욱 클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소한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찌를지도 모른다.

그 사건은 워낙 큰 대형 참사였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뒤따르는 말들도 참 많았다. 정작 제대로 밝혀지는 것 없이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해당 사건이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말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정치싸움이니 선동이니 이런 건 잘 모르겠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다만 남겨진 이들의 슬픔에는 거짓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자의 마음이 그 무엇으로 보상될까. 적어도 애써 담담하려는 마음에 돌멩이를 던지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