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곡의 재해석, <Lately> Cover 1편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중 어느 쪽을 명작이라 할 수 있을까? 둘 다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대답할 수도 있고, 고민할 필요 없이 베스트셀러이면서 스테디셀러인 것이 진정한 명작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스테디셀러 쪽을 택하겠다. 베스트셀러는 뭐랄까, 명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단계처럼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던 나가사와 선배의 허세에는 동조하고 싶지 않지만, 그가 말한 “시간의 세례”의 의미만큼은 동의할 수 있다. 시간이란 때로 풍화작용처럼 모든 것을 닳게 하고 희미하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선명하게 남는 것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세례가 되기도 하니까.

오늘 소개할 Stevie WonderLately는 그런 점에서 확실한 명작,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Hotter than July》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 영국 차트 3위, 빌보드 팝 싱글 차트 64위를 기록하며 의심의 여지없는 베스트셀러였다. 그 이후 약 40년이 지났지만 Lately가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즉, 베스트셀러이면서 스테디셀러인 진정한 명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Lately는 수많은 가수들의 단골 Cover 곡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아주 잠깐 실용음악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심지어 그때도 필수적으로 불러야 했던 3곡의 팝송이 The BeatlesYesterdayFrank SinatraMy Way, 그리고 Stevie Wonder Lately였다.

이번 글에서는 원곡 Lately의 느낌을 다양하게 살린 Cover 곡 중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곡들을 소개하려한다. Stevie WonderLately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잘 몰랐던 사람에게는 명곡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여러 장르의 곡이 난무하는 대신, 하나의 곡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되는 가운데 임하는 작업은 지루하지 않은 일관성과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우선 오늘 소개하는 Lately로 먼저 경험해보시길.

  1. Jodeci – Diary Of A Mad Band / 1993

가장 유명한 Cover 곡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10여 년 전 유행했던 ‘알소동(알앤비 소울 동영상)’ 다음 카페에서 직접 봤던 동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가죽 자켓에 모자, 선글라스가지 갖춰 입은 흑인과, 정반대로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채로 금목걸이만 걸친 또 한 명의 흑인. 이게 무슨 조합인가 했는데, 노래를 듣자마자 그 모습마저 멋있어 보이는 보정 효과가 발동될 정도였다.

주관적으로는 원곡의 쓸쓸하고 처량한 감정과 R&B장르 특유의 기교 양쪽 모두를 극대화한 Cover 곡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반부에 클라이맥스에 폭발하는 애드리브의 향연은 약간 과격하다 싶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곡의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는 안정감이 있다. 그저 멋을 내기 위한 애드리브가 아니라 곡의 감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원곡이 발매 13년 뒤인 1993년에 Cover했음에도 단번에 차트 1위를 달성했고, 심지어 내가 처음 영상을 봤던 2000년대 초반까지도 유명한 Lately Cover곡이었다.

감정과 기교, 두 가지 모두를 온전히 즐기면서 작업에 임하고 싶다면 JodeciLately를 추천한다.

  1. Gal Costa – Letra & Música: A Tribute To Stevie Wonder / 2009

Gal Costa는 브라질의 국민 가수(라고 한다.) 사실 나도 그녀를 미리 알고서 찾아 들었던 것이 아니라, Lately Cover 곡을 듣다가 그녀의 버전을 듣고 반해서 처음 알게 됐다. 뭔가 남미 특유의 끈적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있는데, 뇌쇄적이기보다는 고고하고 우아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Lately를 듣다가 깜짝 놀란 것은, 영어가 아닌데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는 것. 한참 듣다가 후렴구를 따라 부르려는데 내가 아는 가사가 아니어서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원곡을 다른 국가의 언어로 번역 또는 번안하여 부르게 되면, 원곡을 알고 있는 입장에선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Lately를 한국어로 번안한 DJ.DOCGood bye (Lately)는 끝까지 듣기가 힘들 정도였다. (비단 언어의 이질성만이 문제는 아니었지만… ) 그런데 생전 들어본 적도 거의 없는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Lately가 이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울 수가.

원곡을 거의 그대로 살리면서 약간 더 산뜻한 멜로디를 얹어 Gal Costa의 목소리와 더 잘 어우러지도록 편곡했다. 저음이든 고음이든 목소리에 턱, 하고 걸리는 부분이 전혀 없이 매끄러우면서도 깊이가 대단하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끝음 처리의 바이브레이션은 거의 여자 Stevie Wonder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느낌이 비슷하다. 1945년 출생의 그녀가 2009년에 헌정 앨범 수록곡으로 불렀으니,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는데도 어설프게 Cover하는 젊은 가수들보다도 훨씬 세련됐다.

색다른 Lately, 그러면서도 작업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Lately를 듣고 싶다면 Gal Costa Lately를 적극 추천한다.

  1. Jack Lee, Annekei – Letter / 2008

재즈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서 뉴욕과 일본 등지에서 활동해온 Jack Lee와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컴퓨터과학 학사 출신이다. 전공을 살리지 않은 성공적인 사례랄까.) 노르웨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Annekei가 함께한 앨범 Letter에 수록된 Lately다. 네이버 ‘오늘의 뮤직’ 2012년 10월 매거진에서 Jack Lee를 소개하는 헤드라인은 ‘투명한 기타와 정숙한 멜로디’였는데, 재즈 기타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Lately Cover에서만큼은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곡 R&B 특유의 애드리브를 쫙 빼고 담백하면서도 상쾌하게 노래를 이어가는 Annekei의 목소리와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우러지는 기타였다.

다만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연인을 짐짓 모른 체하며 쓸쓸한 희망을 노래하는 원곡 속 남자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화자가 여성 보컬인 Annekei인 것도 있지만, 곡의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보사노바 리듬과 산뜻하면서도 잔잔한 멜로디가 이별을 앞둔 처절함보다는 오히려 관계를 훌훌 털어버리며 쿨하게 떠나가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원곡 Lately에서 남자가 “내 예감이 틀리길 바래.”라며 자기부정을 할 때, 이미 마음이 돌아선 여자의 마음 상태를 Annekei가 대변하는 걸까. 혹은 슬픈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가 어우러질 때 역설적으로 극대화되는 비극의 효과를 노린 걸까.

아무튼 원곡과는 굉장히 다르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매력적인 Cover라고 볼 수 있다. 원곡을 전혀 모르고 듣는다면, Cover곡이 아니라 독자적인 스타일을 지닌 곡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Jack LeeAnnekei는 자신들만의 색깔을 잘 입혔다. 우울과 애원, 쓸쓸함으로 점철된 여러 Lately 사이에서 밝아진 시야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면 Jack Lee, AnnekeiLately가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