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일하면 집에서도 어설프다.

돌아보니 그렇다.

어설프게 일하면 집에 와서도 어설펐던 것 같다. 오늘 집에 오자마자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직장에서 일을 어설프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야근이 자랑도 아니고, 요즘 세상엔 어쩌면 금기와도 마찬가지겠지만 자발적으로 맡은 바 일을 완수하고자 끝까지 고군분투한 건 스스로 인정하고 싶다.

야근은 많은 오해를 산다.

일을 못해서 야근을 한다거나, 일과 시간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물론, 예전엔 상사 눈치 보느라 하는 일 없이 야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간혹 있긴 하지만. (없으면 그게 직장일까.) 하지만, 작금의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야근을 할 정도로 일은 정말 많다. 일이 많아서, 끝내지 못해서, 더 잘하고 싶어서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 40시간이 되면서, 중간에 일을 끊어야 하는 당위성이 생겼다.

좋기는 한데, 솔직히 다음 날이 두려울 때도 있다. 또는 결국 집에 가서 일을 하게 되는 형국이다. 끝내지 못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에게 돌아온 일들은 끝끝내 나의 역량과 평판이 된다. 그러한 상태로 집에 일찍 가도 마음은 불편하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가족들과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불쑥 걸려오는 전화나, 무심코 열어본 회사 메일에 내가 관여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다급한 메일을 보면, 차라리 일을 더 하다 올 걸… 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해야 하는 일, 끝내 하고 싶었던 일을 어설프게 덮는 날이 있다.

그것은 시간과 관계가 없다. 일과 전이든, 일과 후 야근이든. 그것은 마음 가짐에 달렸다. 실제로, 어설프게 일을 마치고 온 날은 집에서도 어설프다. 하고자 했던 결심도 사라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설령, 머리에 떠오른다 해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후회와 함께 잠이 오지 않는 두 눈을 껌뻑인다.

하지만 오늘처럼, 직장에서 끝까지 무언가 해내려 발버둥 치고 돌아온 날은, 신기하게도 의지가 충만하다.

아마도, 직장에서 불태운 ‘직장인’으로서의 나에게 시기 질투를 느껴, ‘개인’으로서의 내가 발동하는 듯싶다. 직장에서도 그토록 발버둥 치는데, 나를 위한 이 짧은 시간은 이토록 헛되게 보낼 것이냐는 봐줄 만한 시기 질투이자 객기 가득한 오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니 몸은 힘들어도 영 개운하다.

야근을 장려하거나, 회사 일에 매몰되자는 말이 아니다.

‘주인의식’은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인 나에게 책임을 다하는 마음가짐이자 태도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것은 어설프지 않은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 어설프지 않은 시간은 내가 어디서 무얼 하든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한다. 내가 가진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불태우는지, 얼마나 오래 달구는지. 그 온도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나의 하루는 언젠간 어설프고, 또 언젠간 어설프지 않을 것이다. 그 둘을 오가며 좌절하고, 기뻐하고 허탈해하며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다짐한다.

내일 저녁,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시간을 어설프게 보내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어설프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를.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가 맡은 ‘업(業)’에 초집중 하기를. 그래서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를. 직장인으로서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그 하루하루는 모두, 다름 아닌 나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