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노동요 리스트 5편
  • 명곡의 재해석, <Lately> Cover 2편

 

Stevie WonderLately는 그 명성만큼이나 Cover 곡도 수두룩한 편이다. 지난 편을 통해 성별이나 국적, 음악 장르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Lately 3곡을 살펴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조금 더 한정적인 주제로, 한국 가수들의 Lately Cover 곡을 소개하려한다.

여러 가수들이 Cover 한 만큼 음알못도 알아차릴 만큼 확연한 가창력 차이가 있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 원곡에 가깝게 재현하는가 하면 반대로 한국적인 정서를 덮어씌운 곡도 있다. 각자의 호불호에 따라 소개하는 모든 Cover 곡들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편 Lately Cover 곡들과, 이번 편에서 소개하는 곡들을 한데 모아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면, 분명 동일한 소스의 곡을 듣는데도 지루하지 않은 효과를 누리는 것만은 보장할 수 있다. 내 주관에 따라 별로라고 소개했던 곡이,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 곡 정보와 함께 감상의 다양성을 확인한다는 관점으로 읽어주시길. 그럼 ‘한국 가수의 Lately Cover 곡’ 을 소개하겠다.

  1. 이정

2002년 4인조 R&B 그룹 7dayz의 멤버로 데뷔한 이정은 2003년 자신의 첫 솔로앨범 타이틀 곡 다신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기존의 R&B 가수들이 주력하던 화려한 기교와 간드러지는 목소리 대신 파격적이고 강렬한 R&B 스타일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까맣게 태운 피부와 선글라스, 드레드락 헤어스타일 등 비주얼로도 ‘흑인 음악하는 가수’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냈다. 가창력만큼이나 예능감도 뛰어나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런 이정이 2004년, 그러니까 막 데뷔를 하고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에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Stevie WonderLately를 직접 피아노 연주하며 불렀던 적이 있다. R&B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에 남자 가수들은 Lately나 Brian Mcknight의 One last cry, 여자 가수들은 Alicia Keys의 If I Ain’t Got You를 부르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정은 목소리 톤이나 스타일이 확고한 R&B인데다가, 그 자체로 Stevie Wonder와 비슷하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Cover 중 하나다. 다만 데뷔 초기이고, 흑인 음악을 한다는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다보니 다소 과장된 부분도 많고 고음이라든가 끝음 처리라든가 불안한 요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날 것’의 느낌조차 소울풀하게 풀어냈다는 것이 아주 주관적인 나의 감상평. 아쉽게도 음원은 따로 없고, 포털 검색을 통해 동영상으로만 감상할 수 있다.

  1. 김건모

사실 한국 흑인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봐도 무방한 김건모 옹. 그의 전성기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읊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지금은 ‘쉰건모’라는 별명으로 소주 광고를 찍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철딱서니 없는 아들 취급을 당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여전히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수들의 가수로 인정받는다.

그런 그에게도 앳된 시절이 있었으니, 관객 앞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인사도 하고 쑥쓰러워도 할 줄 알던 1993년, 그의 나이 만 24세였다. 1992년에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라는 곡으로 데뷔했으니 그로부터 1년 뒤다. 아직 레전드가 되기 전이랄까.

그는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Lately를 부른다.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수준의 가창력은 아니다. 당연히 노련미나 완숙미도 없고, 성량이 깊거나 시원하지도 않으며, 전체적으로 약간은 불안한 감도 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특유의 특색만은 여전했고, 화려한 기교 없이도 탈 한국의 흑인 소울이 느껴지는 강점도 확실했다.

김건모는 그 이후 나름 가요계 짬밥이 차고 나서 김조한과의 듀엣으로 몇 차례 Lately를 불렀다. 가창의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들으면 짬밥이 찰수록 더 감탄을 자아내는 Lately를 들려주지만, 개인적으로는 1993년의 풋풋하고 어설픈 라이브가 더 좋다. 노래가 끝난 뒤 스스로 “굉장히 어색했죠?”라며 부끄러워하는 장면은, 적어도 베테랑이 되어버린 지금의 김건모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고. 김건모 버전의 Lately 또한 안타깝게도 음원은 없다.

  1. 김조한

1993년 그룹 솔리드로 데뷔한 뒤, 명실상부 ‘R&B 대디’로 통하는 김조한. 그 역시 징하다고 할 만큼 한 길만 걸어온 가수다. 꾸준히 앨범 활동을 해왔고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적인 가수이기도 하다.

김조한Lately 또한 음원은 없고, 라이브 영상만 존재하는데 단독으로 부른 것은 거의 없고 성시경, 김건모 등과의 듀엣 라이브 영상이 대부분이다. 사실 누구와 듀엣을 하든 김조한은 ‘Only My Way’ 방식으로 부르기 때문에, ‘이럴 거면 굳이 듀엣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긴 한다.

나느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R&B 본연의 과한 애드리브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Lately Cover에서도 그 특유의 애드리브는 멈출 줄을 모른다. 전주가 별로 길지 않은데도, 그 구간을 꽉꽉 채워 음을 오르내리고 듀엣을 할 때 상대방이 부르는 중간 중간 끝없이 추임새를 넣는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부담스러울 수 있는 스타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조한이 대단한 점은 ‘과하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곡을 살리는 자연스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순전히 자신만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가창력을 뽐내기 위한 애드리브가 아니라, 나름대로는 곡을 이끌고 가는 설계에 따라 진행하는 애드리브여서 가능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줄여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정통 R&B, 특히 90년대 중후반의 R&B 스타일을 선호한다면 김조한 버전의 Lately를 적극 추천한다.

  1. 나얼

‘김나박이’ 중 한 명으로서, 스스로는 “가창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시는, 실제로 만나보기 전까지는 실존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가창력의 소유자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내내 앤썸부터 브라운아이즈, 브라운아이드소울의 팬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나얼Lately는 정확히 말하자면 브라운아이드소울Lately라고 볼 수 있다. 콘서트에서 부른 것을 관객이 촬영한 동영상이 웹상에 퍼진 것이다. 브라운아이드소울 나머지 멤버들의 목소리도 매력적이지만 후렴구를 부르는 나얼의 그것은 정말 독보적이다. 걸리는 것이 전혀 없는 맑은 목소리인데도 날카롭지 않고 풍성한 볼륨감으로 R&B 소울을 뿜어낸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가수의 외국인 리액션’ 영상 시리즈에서 나얼은 감탄을 넘어 충격을 전해주는 가수 중 한 명이고 특히 그가 부른 Gloria를 듣고 한 흑인은 “제가 모타운으로 돌아간 것 같네요. 나얼이 한국 가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진짜 모타운 가수하소 믿었을 걸요.”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아무튼 그런 나얼Lately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질이나 음질이 온전하지 못하고, 나얼의 완창이 아니라는 점은 정말 아쉽지만 혹시 나처럼 나얼을 좋아한다면 짧게라도 들어보길 추천한다. “바로 이거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테니까.

  1. 박효신

이번 편에서 소개할 Lately Cover 중 음원이 없는 마지막 가수다. ‘김나박이’ 중 한 분이 더 등장하셨다. SG 워너비김진호 등장 이전, 원조 ‘소몰이 창법’의 주인공인 박효신. 원곡자인 Stevie Wonder는 물론이고, 이번 편에서 소개하는 다른 한국 가수들이 비성을 베이스로 미성 또는 얇은 톤을 가졌다는 점에서 박효신Lately는 사실상 Cover라기보다는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텁텁하고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흉성 베이스의 목소리와 풍부하고 부드러운 비성이 섞인 박효신의 목소리는 Lately의 가사, 그 감성을 극대화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어떤 점에선 원곡을 넘어서는 감성이 있다고도 본다. 음원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가수 중 한 명이다.

2006년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성시경과의 듀엣으로 먼저 화제가 된 적이 있고, 이후 군 복무 중이던 2012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색다르게 편곡한 Lately를 불렀다. 다른 거 필요 없고, ‘김나박이’ Lately는 꼭 한 번쯤 들어볼 가치가 있다.

  1. 김범수

이쯤 되면 김범수Lately를 부르지 않았을 리가 없다. 몇몇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2003년 정규 앨범 <Friends>에도 수록되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불렀고 원곡의 멜로디를 거의 그대로 살렸는데, 다만 기타 선율과 후렴구 코러스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특히 가사의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멜로디가 아니냐는 비판이 많은데,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는 의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담백하고 깔끔한 톤으로 소울풀한 R&B 감성을 풀어내는 김범수만의 강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보통 R&B를 한다고 하면 숨소리가 많이 섞이고 힘 빠진 목소리가 자유자재로 꺾기 신공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흉내를 내는데 김범수는 속이 꽉 찬 목소리에 특유의 비성으로 자신만의 R&B를 보여준다. 애드리브 꺾기 또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웅얼거리며 뭉개지 않고, 한 음 한 음을 정확히 계단처럼 짚으며 구사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R&B 감성이 확실한 Lately를 듣고 싶다면, 김범수 버전을 추천!

  1. 성시경

이전의 Lately와는 전혀 다른 버전이다. R&B의 성공적인 ‘발라드화’랄까. 어쩌면 성시경만 할 수 있는 Cover이기도 하다. 분명 원곡 특유의 끝음 처리, 꺾기, 애드리브를 거의 다 구사하는데도 끈적한 R&B라기보다는 친숙한 발라드 느낌이 강하다. 내가 성시경이라는 가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발라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의 발라드 같은 Lately가 아주 맘에 들었다.

발라드 느낌이 나다보니, 원곡과는 상당히 다른 음향 효과와 멜로디도 이질감이 덜하다. 성시경의 부드러운 음색은 멜로디와 찰떡 같이 어우러지고, 특유의 애수는 가사의 내용을 몰라도 상황의 쓸쓸함을 드러낸다. 라이브 무대에서 김조한, 박효신과 듀엣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전체적으로 발라드 느낌인 음원 버전이 더 좋다. (성시경과의 듀엣에서도 김조한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엄청난 정통 R&B를 선보였다. 피아노 치던 성시경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R&B보다는 발라드가 좋은데, Lately도 좋아하는 분이라면 성시경 버전을 추천한다.

  1. 서지원

만 스물이 되기도 전에 불귀의 객이 된 가수 서지원. 내 눈물 모아라는 명곡이 담긴 2집 발매를 겨우 3주 앞두고 세상을 떠 더 안타까운 가수다. 특유의 순수하고 청량한 목소리, 때 묻지 않은 감성으로 많은 팬뿐만 아니라 음악업계에서도 뮤지션의 역량을 인정받고 있던 때라, 그의 죽음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치지 않고 유고 앨범이 제작될 수 있었다.

서지원Lately는 그가 떠난 1996년 12월에 발매된 3집 유고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정규 곡으로 준비했던 것은 아니고, 관객이 있는 곳에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며 불렀던 녹음본을 수록한 것이다. 찾아 들어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피아노 연주가 탁월하다거나 가창력이 뛰어난 Cover는 결코 아니다. 연주과 노래가 따로 노는 부분이 꽤 있고, R&B 기교를 따라 하기는 하지만 어설픈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Lately는 꼭 한 번씩 찾아듣게 된다. 세상을 뜬 자에 대한 그리움이나 세월을 지나며 더해진 환상성 따위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노래에는 귀담아 듣게 되는 힘이 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의 표정이나 피아노는 치는 손가락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왠지 보이는 것만 같달까. 조금 서툴지언정 얼마나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아니 오히려 ‘잘 불러야겠다.’는 생각은 일체 없이 그저 노래에 빠져 노래를 부르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가수 서지원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거나, 진심만으로 가득 찬 Lately를 듣고 싶다면, 故 서지원Lately를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