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엄청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제대로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동호회에 복귀해서 5월 중순에 있을 문디알 탱고 챔피언십 한국 예선에 참가하려 맹연습을 했어야 했지만… 도저히 심신이 지쳐 바로 복귀할 마음이 먹어지지가 않았다. 탱고 수업에 가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힘’이 들었다. 정말 도저히 힘이 들어서 어떤 생산적인 활동에 의욕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헌데 지난 주말 그러니까 토요일에 우리 탱고 동호회가 경상남도 진주에 새로 스튜디오를 오픈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게 갑자기 웬 뜬금없는 지방 스튜디오 오픈 소식이지? 라고 생각했으나 손은 이미 진주 오픈 파티에 참가 신청서를 누르고 있었다. 아마 내게 필요했던건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놀고 돈을 펑펑 써대면서 머리를 비워내는 작업인 듯싶었다.

좌우지간 부산 동호회에서 수업을 들으시던 두 분이서 의기투합해 진주에 동호회를 여신 건데, 부산 쪽에서는 우리 동호회의 수업이 꽤 성과와 호응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우리 동호회가 수업 내용은 좋기는 하지… 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또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내친김에 진주에 내려갔다가 정말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3일 정도 더 있다가 올라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최근 반년 동안은 연극 때문에도 그랬지만 정말 독서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는 ‘독서 여행’이란 걸 계획했었을까. 그걸 이참에 한번 해보려고 했다.

짐가방이 너무 무거워져서 책을 뺄까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었건만, 쿠팡은 정말 로켓배송이었다. 이틀전에 시킨 기내용 캐리어가 집앞에 도착해 있는 걸 보고 가방에 쌌던 짐들을 전부 캐리어로 옮겨서 꽁꽁 싸맸다. 이제 난생 처음으로 경남 진주에 갔다가, 3일간 무연고 도시인 ‘대구’에 가서 푹 쉬다 오면 되는 스케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전에 먼저, 해야만 할 일을 해치워야 했다. 진주에 내려가는 당일 날 낮에 나는 우슈 4단 승단 심사가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몸의 건강을 찾기 위해서, 무릎과 허리 어깨가 조금이라도 덜 아픈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태극권이, 어느덧 4단 심사를 보고 지도자 자격까지 갖출 수 있는 지점까지 끌고 오게 되었다. 문제는 연습할 시간이 정말로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그냥 승단심사도 아니고 4단 심사였다. 4단부터는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지도할 수 있는 법적인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안에도 원래라면 오지 않을 대한 우슈 협회 본부 감독관이 파견을 오게 됐다. 하필이면 그런 중요한 심사인데 경남 진주에 내려가는 날이라 정신도 없었고… 어찌저찌 준비는 했다만 마음은 비운 상태였다.

1시부터 심사가 시작이었는데 12시에 미리 도착해서 한참을 몸을 풀었다. 그리고 뭐랄까… 마음이 좀 허했다. 이유는 아마 도장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을까 싶다. 도장 식구들과, 그리고 관장님을 모시고 함께 와서, 질책도 받고 지적도 받아가면서 그렇게 해나가던 작업이었는데. 비록 계속 관장님께 태극권을 배우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는 하나 있던 도장이 없어져서 거의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승단 심사를 보러 가는 마음은 굉장히 착잡했다. 더군다나 심사위원들이 보고 있는 자리라는 것이 꽤 부담이 되었다. 심사를 보는 사람들의 실제 무술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쨌거나 타인에게 나의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나서 도복이 살짝 젖을 정도로까지 몸을 풀고, 곧 심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관장님이 들어오시는게 보였다. 연세도 있으시고 굳이 안오셔도 될 자리라 안오시지 않으실까 했는데, 아무래도 미숙한 제자들이 못내 못미더우셨던 모양이셨다. 이래저래 심사위원들과 인사도 나누시고 손수 다시 동작도 봐 주시기 시작했다. 마음이 내심 놓이…지는 않고 더 부담이 백배가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냥 나의 태극권을 심사 받는 게 아니라, ‘스승에게 지도받은’ 태극권까지 심사를 받는 모양이 되어 버렸으니.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누군가의 앞에서 선을 보였던 연무 중에서는 정말 가장 열심히 하고 스스로 잘했다 생각이 드는 연무가 아니었나 싶다. 병장기 연무를 할 때는 검을 들고 정말 천장을 뚫고 날아가듯이 했으니, 관장님이 끝나고 웃으시면서 ‘역시 젊은 사람들이 활력이 넘치는구만, 잘했습니다’ 라고 해주셨을 때에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같이 심사를 본 도장의 오래 배우신 회원분들의 연무도 훌륭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태극권을 하고, 또 태극권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냥 정말 이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운동하고, 또 발전해나가고, 또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할 수 있는 이 모습이. 이게 정말 좋다고.

모든 게 끝이 나고 관장님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하면서도 계속 그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이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오래오래 이러고 싶다고. 결국 그러다가 진주가는 예약 버스를 놓친 게 천추의 한이지만. 심지어 프리미엄 버스를 놓쳤는데 3분차이로 놓쳐버려서 환불도 못했다. 결국 우등을 타고 진주로 출발했는데, 아… 정말 3시간 30분은 멀어도 너무 멀더라. 거의 허리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도착하고나서는 도저히 기력이 없어서 김밥천국에서 라면에 김밥을 먹고, 근처 사우나에서 샤워까지 한 다음에야 진주의 탱고 스튜디오에 간신히 찾아갈 수가 있었다.

도착하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동호회 사람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스튜디오를 꽉 채운 전국 각지에서 온 땅게로스들을 보는 기분도 정말 새로웠다. 이제 신나게 춤을 추면 되겠구나! 싶었으나 사실 간과한 게 있었다. 내가 난생 처음 가보는 진주 땅에서 정말 난생 처음 보는 60명이 넘어가는 땅게라들과 어떻게 까베세오를 해서 춤을 추겠다는 말이겠는가. 가면서도 원래부터 알던 동호회 사람들과 5딴따라도 추면 많이 춘거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날은 2딴따를 추고 밀롱가가 끝날때까지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2딴따면 한 25분정도. 그러니까 나는 3시간 30분을 달려서, 심지어 버스도 놓쳐가면서 달려와가지고 25분을 논 것이었다. 차비로만 한 6만원은 썼지 않았을까.

허무했지만 바람쐬러 왔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서 그렇게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서는 동호회 탱고 선생님과 함께 마치 MT온 듯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이래저래 피곤하고 피곤한 하루였다.

다음날에는 전날 마신 맥주가 문제였는지 정말 일어난 내내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도 진주 동호회 분들은 어찌나 활력들이 좋으신지, 진주 관광지를 하나 돈 끝에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나서야 터미널에서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대구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유로움이 시작되었다. 정말 서울에서 승단심사를 거쳐 진주로 갔다 대구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었다. 얼른 쉬기만을 바랬다. 빨리 컨디션을 충전해서, 그저 책이나 읽고 넷플릭스나 보면서, 그 어떤 관광지도 가지 않고 숙소에 틀어박히는 걸 상상했다.

반은 성공했다. 숙소에 틀어박히는 걸.

그리고 반은 틀렸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채워버렸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짐을 풀고 장부터 보러갔다. 어지간하면 현지에서 그냥 사먹었을 텐데, 이유가 있었다. 나는 조금 비싼 돈을 들여서 모텔에서 에어비앤비의 아파트로 숙소를 업그레이드했는데, 정말 세상 편한 원룸 아파트여서 쉴 맛이 났다. 헌데 숙소 안에 보니 정말 그냥 아파트여서 밥솥에 조리도구에 웬만한 것들은 전부 갖춰져 있는 것들이 아니겠는가. 심지어는 세탁기에 세제까지 갖춰져 있었다. 이것들을 그냥 놔두자니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장을 보러가서 3일치 장을 다 보고 오면서 뒤늦게 생각하긴 했다. 거의 5만원어치를 샀는데, 내가 많이 먹어봐야 5끼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그냥 한끼에 만원씩 사먹으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 그러나 후회해봐야 늦는 법. 나는 낑낑거리며 숙소로 복귀한 뒤 재빨리 샤워를 하고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었다. 그리고 그때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나는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됐었다. 입을 옷들을 충분히 캐리어에 많이 넣어 왔었다. 그저 있는 세탁기 아깝다고 빨래를 돌려버린 뒤, 나에게 닥치 일들은 다음과 같다.

일어나자마자 장을 봐온 먹거리들을 요리를 해서 먹는다. 5끼를 꽉 채워서 사왔기 때문에 아까워서 집에서 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쓴 수건과 속옷, 그리고 입은 옷가지들을 빨래를 돌린다. 돌린 빨래는 널고, 베란다에 비치된 청소기를 꺼내서 청소를 돌린다. 그러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곧 있으면 점심 시간. 나가기 애매해서 다시 밥을 차려서 먹고, 먹고나서 나갔다가 커피 한잔 하고 나면 또 애매하게 밥먹을 시간이 되고…

하루종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나니 진이 빠져서 독서는 할 수가 없었다. 넷플릭스 도 좀 화면이 커야 볼만하지 핸드폰으로는 이거 보기도 좀 그랬다. 결국 대구에서 3일간 그렇게 ‘나 혼자 산다’를 찍고 책은 결국 한 페이지도 펴 보지를 못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으려고 가져왔는데… 미안해요 토마스 만. 내가 올해 안에는 기필코 다 읽고 말테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정말 많이 나아졌다. 모두와 떨어져서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고, 그저 한 거라고는 먹고, 자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내 인생을 그냥 살아냈을 뿐인데,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행복했다. 지방의 소도시까지 여행을 와서 그 어떤 관광지도 가지 않았고, 그 어떤 맛집도 찾아다니지 않았다. 외식은 첫날에만 딱 한번 했고, 그마저도 근처 대형 마트 안에 있는 식당에서 우동 한그릇 먹고, 프랜차이즈 커피숍가서 기프티콘 쓴 게 다였다.

이런게 묘하게, 그냥 정말 희한하게 나에게는 ‘힐링’이 되었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삶에 지치고, 정말 살아갈 동력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의식주 활동에 이렇게 집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집은 그저 자기 위해서 들르는 곳이고, 먹는 것은 사먹거나 집에서 밥하는 어머니의 요리를 먹거나, 빨래도 마찬가지 벗어놓으면 세탁기가 알아서 돌아가고 어머니가 갠 옷들을 입었는데. 내가 나를 위해 하는 활동들이, 아주 간단한 것들이지만 어떤 위로가 됐었던 것 같다.

이런 이상한 힐링 여행 끝에,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간다. 그래도, 이번 여행 끝에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굳이 많은 사람 만나러 다니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연락 하러 다니지 않고, 정말 내 인생에 집중할 것이다. 그게,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첫 번째 선물인 것 같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