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어중간한 건 싫어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학교 때, 그러니까 막 사춘기가 와서 나라는 인간의 존재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등등 갑자기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결국 그때 하던 고민을 지금도 풀지 못하고 아마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텐데, 그래서 결국 ‘나는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근데 그때 한들 뭐 알 수가 있나. 당연히 너무 포괄적인 질문으로 시작해서 하나씩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천착했던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였다.

무수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나는 노는 게 제일 좋다’ 였다. 아마도 그딴게 무슨 결론이냐, 노는 건 나도 제일 좋다, 그거 말고 근원적인 거 없냐, 하는 사람도 많을테지만, 정말로 그랬다. 내가 가장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노는 때’였다. 다른 것도 좋지만 노는 것만은 못했다. 뭘 하든 노는 게 제일 좋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노는게 제일 좋은 뽀로로가 괜히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란 걸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우리가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그 말을 뽀통령님은 거침없이 입밖에 내뱉어 우리를 선동하는 것 아니겠는가. 가히 21세기의 리더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지간에 노는 게 제일 좋은데, 어중간한 건 싫어하다 보니, 정말 놀 땐 화끈하게 놀자는 게 내 주의였다. 그래서 화끈하게 못 놀 거면 아예 안 놀아버리자는 주의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결론적으로 나는 잘 못 놀았기 때문에 안 노는 순간들이 더 많아서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었지만. 뭐 그랬다. 디테일한건 다 집어치우고 예를 하나 들자면 나는 ‘술 한잔만 하자’ 라는 걸 싫어했다. 술을 정말 한두잔만 마신다면, 그것 때문에 다른 집중해야 할 공부를 못 할 가능성이 컸고, 그럴거면 아예 술을 진탕 먹고 놀고 뻗어버리는 게 좋은데 그저 한 두잔만 먹고 끝낸다? 이런 참 이도저도 아닌 걸 나는 싫어했다. 항상 주변의 또래들은 대충 이것도 저것도 한다리씩 걸치면서 살아가는 일들이 많았지만, 나는 성격이 나쁜건지 비비 꼬인건지 참 그게 안됐다.

인간이란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무리를 형성하는 법이어서, 그렇게 자라난 나는 스무살이 되고 대학생이 돼서 그렇게 나처럼 ‘노는 게 제일 좋은데, 어중간한 건 싫은’ 사람들끼리 뭉쳐다니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친했고, 지금도 가장 친한 사람인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서로 참 취향이 비슷했다. 뭐든 할 거면 해버리고, 안할거면 아예 안해버리는 인간들끼리 뭉쳤으니, 놀 때는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게임을 해도 밤을 샐 게 아니라면 시작을 안했었고, 술을 먹어도 끝장을 보고 다음날 해 뜨는 걸 보면서 해장국까지 먹을 게 아니라면 시작을 안했었다. 몰려다니던 남자 무리들끼리 옹기종기 자취방에 누워서 수다를 떨기 시작하다가, 정말로 술한잔 안 마시고 수다만 떨다가 날밤을 새버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고 놀고 다녔으니,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나간다 치면 기본이 2박3일, 욕심을 내면 3박4일이 기본이었다.

대학교때 작은 동아리를 다녔는데 MT를 가도 2박 3일을 갔다. 대천 해수욕장을 가나 싶다가, 대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무슨 섬에 들어가서 2박을 지내고 정말 해수욕은 원없이 하고 놀고 왔다. 밤새 고기 구워먹고 술 퍼마시고 필름이 끊겨서 초고추장 종지를 들고 민박집 화장실 벽을 온통 초고추장 천지를 만들어놓으면서 내 인생 최고의 주사를 갱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끝까지 가서 나라는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진상과 주사의 끝을 보고 나니 그 뒤로는 정말 술을 조심하게 됐다. 사실 그 뒤로는 단 한번도 술 자체를 좋아해 보거나, 혼자서 술을 마시거나 한 적은 없다.)

군대를 다녀오고 머리가 좀 굵어지고, 동시에 조금씩이나마 용돈 벌이를 하게 된 이후로는 더 가열차게 놀러다녔다. 1번 하고 없어진 미친 가성비의 축제였던 M-Net 주최의 록 페스티벌을 3일 내내 함께 했던 것도 그 형과 함께였다. 엔간하면 참 1박 2일로 갈 법도 한데도, 그때는 숙소도 걸어서는 못 갈 거리라 택시를 타고 15분을 가야 되는 거리에 잡고서도, 한강 공원으로 3일을 출근하면서 미친 듯이 뛰고 구르고 땀흘리고 떼창을 하고 놀았었다. 군대를 갓 전역한 혈기였으니 그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맛본 그 ‘노는 맛’에 취해서 그 이후로 록 페스티벌을 해마다 언제든 가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참 쉽지는 않았다. 그때 M-Net이 잠깐 미쳤었는지 3일짜리 록 페스티벌 축제(그렇다고 라인업이 구린 것도 아니었고 정말 환상적이었다)가 3만 8천원인가 4만원돈이었는데, 지산밸리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하루 티켓값이 5만원을 넘어서 시작하는 걸 생각하면, 이제는 젊음도 젊음이거니와 그정도 가성비도 나오지 않아 쉽사리 시도하기가 어려워졌다.

뭣보다, 돈이야 쓰면 되고, 젊음이야 아직 밀어붙일 체력이 남아있지만, 시간이 서로 부족하게 됐다.

록 페스티벌을 갈 수야 있지만, 이제는 2박 3일로 어딜 다녀올만한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형도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나야 반 백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론 소중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와중이라 서로 딱 맞춰 이틀 이상의 시간을 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현실이다.

그와중에 이번에 한 연극을, 그 형이 오랜만에 보러 왔을 때는 참 반가웠다. 거의 반년만에 보는 얼굴이던가. 워낙에 가까이 지내고 연락도 자주하다보니, 그렇게 얼굴을 안보고 오래 시간이 흐른지를 몰랐었다. 서로 반년만에 만났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놀라서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덕분에 약속을 다시 잡고 정말 간만에 한번 같이 놀러 가기로 했었다. 그래서 연휴를 틈타 월요일에 가서 화요일에 다녀온 게, 전주 국제 영화제였다. 그 형이랑만 전주 국제 영화제를 통틀어 3번을 다녀온 셈이 됐다. 10년전 스무살 대학생 시절에 동아리 사람들이랑 함께, 그리고 한 3년전,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함께, 그리고 바로 엊그제 이제는 다시 또 나이를 먹어 30대초반이 되어 가장 친한, 그리고 아직 연락을 하는 유일한 형과 함께.

이번 여행은 예전 그렇게 놀기 좋아해서 끝장보기 좋아했던 우리들의 스타일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우기고 우겨서 어떻게든 2박 3일이 안되겠냐고 했지만, 결국 형이 다니는 회사도 있고, 사정이 안되는 관계로 1박 2일로만 일정을 잡았다. 숙소를 잡는 건 조금 더 럭셔리해졌다.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면서 2층침대가 있는 도미토리도 좋다고 예약하던 것보단 좀 더 돈을 써서 에어비앤비로 간 게 전부지만… 사실 큰맘 먹고 호텔을 예약했어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었다. 전주로 가는 버스를 3시간을 탔는데, 도착하자마자 다리가 풀리는 걸 느껴서 급히 카페로 가서 커피를 쭉 빨아들여야 했다. 순전히 맛이 아니라 컨디션을 위해서. 30대도 아직은 굉장히 젊은 나이지만, 20대 혈기에 버스에 기차에 몇시간을 타고 지방을 간 뒤 다시 배를 타고 이동을 하고나서도 하루종일 해수욕을 하며 놀던 체력과는 사뭇 달랐다. 카페에 앉아 기다리자니 뒤늦게 도착한 형도 부스스해서 깡패한테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비척비척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는 꼴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낀 게 재미라면 재미였다.

서로의 몰골을 비웃으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택시(20대때만 해도 택시잡는 걸 기피했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나서, 게걸스레 식사를 하며 허기를 채우고, 커피를 먹었음에도 풀리지 않는 피로에 커피를 한잔 더 마시면서 전주 시내 영화의 거리로 향했다.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영화의 거리로 가는 길은 어린이날 연휴가 겹쳐 사람들이 붐비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운치는 확실히 조금 사라진 듯, 난잡한 간판들과 온갖 식당들로 가득찬 한옥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닌 것은 확실해보였다. 10년전이랑은, 또 3년전이랑은 다른 풍경이었다.

영화제에 가면 영화를 3편이고 4편이고 앉은 자리에서 끼니도 대충 때워가며 해치웠던 우리들이었는데, 영화를 2편을 보고 나니 눈이 감겨서 참기가 힘들었다. 시간내서 놀러 왔는데 노는 게 노는 게 아닌 느낌이었달까. 아마도 버스 3시간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아 더 그랬던 듯 하다. 3시간을 웅크리듯 앉아서 자는둥 마는둥 하며 달려왔으니, 그러고나서도 또 영화관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서 하루 3시간 영화를 봤으니… 이제는 체력이 버티기 힘들만도 했다.

10년전에, 또 3년전에 새벽에도 잠이 안와서 숙소를 나와 같이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고, 그러고도 배가 고파서 새벽까지 영업하는 가게를 찾아 삼겹살에 맥주를 마시던 우리였다. 다시 찾은 전주 거리에는 그때 갔던 피씨방도, 삼겹살집도 그대로였다. 다만 우리가 그때의 우리가 아니었다. 서로 맥주나 한잔 할까? 하다가도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뭘… 하며 자연스레 빵집에서 군것질거리로 카스테라나 하나 사서 다시 숙소로 향했다.

한옥으로 잡은 숙소는 온돌이 뜨끈하게 틀어져 있었고, 각자 샤워를 하고 나오고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 떨어졌다. 나도 그랬지만 형도, 놀러 와서 1박이 좀 아쉽다고 하는, 그 마음이 서글펐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좀 일찍 일어났다. 한옥이라 볕이 너무 일찍 들었다. 더 잘래야 잘 수가 없어서 일어나 대충 머리를 감고, 짐을 다 싼 뒤, 숙소에서 준비해준 다기가 보여, 차를 우렸다. 일교차가 있어 조금 으슬한 날씨여서, 볕 좋은 마루로 따뜻하게 우린 차를 가져다놓고 앉아 해를 쬐고 있었다. 얼마뒤 짐을 다 챙긴 형도 밖으로 나와, 나를 보고는 같이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속이 뜨끈하게 풀리며, 그제야 한옥의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나무에 꽃들에 장독대에, 있을 건 다 있는 소박하고 예쁜 정원. 나무와 황토로 정성스레 지은 현대식 한옥. 처마 끝에 달려있는 봄하늘의 쾌청함. 오전 아침의 여유로움과, 느긋하게 앉아 볕을 쬐며 차를 마시는 그 한가로움.

전주 영화제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문득 아깝고 아쉽던 그 1박조차도, 이제는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루이상 시간을 못 내지만, 그래서 하루라도 시간을 낼 수 있는 그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는 걸. 반년만에 얼굴을 보고, 서로 시간을 맞춰 여행을 왔지만, 이 시간이 언제 또 있을지를 모른다는 걸.

여전히 노는 게 제일 좋고, 어중간한 건 딱 질색이다. 첫 해외여행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고 45일간의 배낭여행이었다. 언제나 그렇게 놀면 참으로 좋겠지만, 좋은 친구와 함께 어울리는데 항상 그리 극단적일 필요는 또 없지 않겠는가. 그저 1박이라도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