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우리 가족에게는 자동차가 없었다. 군데군데 빨간색이 칠해진, 분명 셋이 타기엔 비좁았을 오토바이 한 대가 전부였다. 가족이 모두 시내로 나갈 때면, 어린 나는 햄버거 패티처럼 부모님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야만 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갑갑했을 것이 분명한데, 내 기억 속 그 공간은 안전하고 안락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이후로 부모님과 그렇게 꼭 붙어 오랫동안 체온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당시 내가 살던 삼계동에는 가까운 초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내동으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교 담벼락 바로 옆 벽돌 주택 1층이었는데 대문을 나서면 교문까지 걸어서 20초, 뛰어서 5초면 도착할 만큼 가까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일렬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거의 300m에 달하는 학교 앞 거리는 온통 음악미술 학원과 태권도 학원, 문구점과 분식점으로 가득했다. 델몬트 오렌지 주스 유리병을 들고서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물의 올챙이를 잡으며 놀던 삼계동에 비하면, 내게 학교 근처는 거의 도심 한복판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변화는 우리 가족에게도 드디어 자동차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1991년 출시한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이자 국민차로 등극한 바로 그 차. 2000년 생산을 끝으로 단종되었지만 여전히 국산 명차로 회자되는 그 차. ‘작고 편리하고 기분 좋은 동료’ 바로 티코였다. 새하얀 티코에 처음 올랐을 때의 감격이란. 창문을 여닫기 위해 수동으로 돌렸던 레버의 모양이라든가 창문이 오르내릴 때 나던 특유의 퍼석퍼석한 소리, 수동 기어 스틱의 현란한 움직임 같은 것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겨우 8살의 나에게 국산차냐 외제차냐, 경차냐 세단이냐 하는 구분은 무의미했다.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동차라는 사실만으로 뿌듯하고 행복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순수한 만족감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와 이모들이 툭툭 던진 티코에 대한 조롱을 들으며 차츰 ‘아, 우리 집 티코가 별로 좋은 차는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소위 잘 사는 집 친구들은 티를 내지 않아도 그런 태가 났다. 자질구레한 학용품부터 옷과 신발, 가방은 물론이고 가끔 하교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 주차된 소나타, 그렌져, BMW까지. 가격은 모르지만 딱 봐도 티코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티코가 얌전한 중학생이라면 그들은 멋진 정장을 갖춰 입은 회사원쯤이랄까. 요즘은 철없는 아이들이 부모의 차가 그렌져인 것을 보고 “그거!(그렌져 거지)”라고 놀린다는 얘길 듣고 기함을 했다. 아니야, 얘들아. 아무리 외제차가 흔해졌다 해도 그렌져를 보고 거지라니.

그렇게 보고 듣는 것이 늘어나면서 나도 사랑스럽던 티코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가끔 늦잠을 자 아부지가 태워주신다고 해도, 괜찮다며 학교까지 내달린 적도 많았다. 물론 나로서는 티코가 부끄럽다는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부모님이 그런 어수룩한 연기에 속았을 리 없다. 그깟 자동차가 좀 작고 후지면 뭐 어때서, 싶다가도 티코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부모님을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헷갈려서 괴로운 적도 많았다. 10년쯤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느라 문짝이며 창문이며 성한 데 하나 없는 티코를 떠나보낼 때도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그러고도 아부지는 모닝이라는 또 다른 경차를 구입하셨다. 나는 고3이 되어서야 겨우 티코와 모닝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가졌던 부끄러움이, 그 자체로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를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은 자동차에만 적용되지는 않았다. 6년 간 줄곧 입었던 교복을 벗고 비로소 패션의 자유를 획득한 대학 신입생 시절, 그러나 나는 단출한 옷가지로 캠퍼스를 거닐어야 했다. 우선 패션 감각이 없었고, 아니 그보다도 쇼핑할 충분한 돈이 없었다. 잘 사는 집 대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보다 더 확실하게 태가 났지만, 나는 보통의 학생들처럼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 ‘마음껏 원하는 것들을 사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적어도 나의 행색에 대한 부끄러움은 별로 없었다. ‘뭐 어쩌라고, 이게 지금의 나인데’ 하는 똥배짱과 ‘어차피 내가 모델이나 연예인도 아닌데’ 하는 약간의 체념, 그리고 ‘깔끔하게 잘 씻고 다니는 게 중요하지’ 라는 청결 의식이 한데 모여 생긴 자존감이랄까. 아무튼, 자칫 부끄러운 일이라고 오해할 만하지만 실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들을 분별해내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분별력은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글을 쓰며, 글밥을 먹겠다는 다짐을 하고 기어코 그렇게 살아보려 아등바등하는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의구심은 떨쳐낼 수 없지만 적어도 나의 지난 행적과 앞으로의 계획이 부끄럽지는 않다.

부끄러움을 아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건 바로 부끄럽지 않은 것을 아는 일. 부끄러움을 알면 반성할 수 있고, 부끄럽지 않은 것을 알면 당당할 수 있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중학생 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늦잠을 잔 아침, 아들이 부끄러울까 망설이는 아부지에게 먼저 학교까지 좀 태워달라고 말하고 싶다. 낡고 흰 티코를 타고 교문 바로 근처까지 가고 싶다. 내리면서, 부끄러움은 한 톨도 묻지 않은 표정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