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듯한 제과제빵 관련 책이 있었다. 서양의 유명한 책 번역본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떠올려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사랑스럽고 달콤해 보이는 케이크와 빵, 쿠키 이미지가 많이 실려있었다. 책의 영향이었는지 어릴 적부터 나는 유독 빵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부부가 하는 친절한 제과점이 있었다. 빵을 살 때면 항상 거기를 이용했었는데 매번 크림빵만 사 먹던 어느 날 신제품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마들렌 느낌의 빵 위에 생크림이 듬뿍 얹혀 있고 그 위에 다시 초콜렛을 부어서 마무리한 새로운 형태였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종류의 빵을 처음 봤던 터라 항상 먹던 것보다 두 배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사 먹었다.

빵을 한입 먹는 순간 혀끝으로 머릿속에 상상하던 그대로의 맛이 느껴지자 왠지 모를 희열도 함께 느껴졌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그 빵을 먹었던 것 같다. 힘 빠지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부드럽고 달콤한 그 빵을 먹으며 기분을 전환 시키곤 했다. 아쉽게도 나의 기분을 상승시켜 주던 그 빵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했다. 졸업과 동시에 이력서를 넣었고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첫 직장이 서울이었는데 처음 몇 개월은 서투른 신입사원이다 보니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취업하기 전 일상은 잠시 잊고 지냈었다. 다만 야근을 하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고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토요일 9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동네의 제과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뒷말은 하지 않아도 대부분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하셨을 것이다. 뭔가에 홀린 듯 제과점에 들어간 나는 취업하기 전 즐겨 먹었던 그 빵과 비슷한 모양의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비슷하게 생긴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빵을 사서 신나게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우유 한 잔을 따르고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 어?… 이 맛이 아닌데…’ 그때의 실망감이란. 단지 작은 빵 조각일 뿐인데 실망스러웠던 그 심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부산말로 하자면 ‘그까짓 빵 쪼가리가 뭐시라고’ 들떴던 마음도 잠시, 오히려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이 들었다. 그 뒤로 제과점만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서 비슷해 보이는 빵들을 여러 개씩 구매했었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이 났고 연휴가 되어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내심 내려가면 매일 그 빵을 먹어야지 하는 혼자만의 즐거운 생각도 함께였다. 내려간 첫날 제과점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고 다음 날  제과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무슨 날벼락인지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빵은 손이 많이 가서 소량만 만드는데 이미 다 팔리고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그 빵을 다음날에야 드디어 맛볼 수 있었다. 아! 그 순간은 그동안 실망스럽고 섭섭했던 마음이 모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휴가의 마지막 날 나는 잊지 않고 제과점에 들러 그 빵을 사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원조 빵을 먹고 나서 마음이 다소 진정되었는지 서울 제과점에서 비슷한 종류의 빵을 찾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휴가를 기약하며 일에만 매진하던 나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빵이 단종되었냐고? 아니 아예 그 제과점이 사라져 버렸다. 신호등 앞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던 제과점은 온데간데없고 병원이 들어서 있었다. 그때의 허망함이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누가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참 빵 하나 가지고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고향의 맛과 유사어로 자리 잡은 ‘소울푸드’였기에 다시는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속상하다 못해 새로 생긴 병원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마침 그때쯤부터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동네마다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이제는 어딜 가든 같은 빵을 먹을 수 있겠구나 했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맛있는 것들이 많아져서인지 소박한 동네 제과점의 맛이 아니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맛을 찾지는 못했고 그때 그 초코 크림빵의 맛은 아직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