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기피하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듯 하다. 아직 나이가 이제 갓 30대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에 직면하게 되면 두근거리는 설렘보다는 두려움부터 앞선다. 뭣보다 삶에 있어서 안정성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떠한 리스크를 짊어지면서 불확실한 것에 모험을 거는 것이, 그 상황 자체에 놓이는 것이 이미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한 가지 변명을 해보자며, 이제는 사실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 가장 공감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나이가 들고 나니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더라.’ 라는 말. 살면서 참 사람 때문에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사람 때문에 아픈 일도 많았다.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을 겪고 나면, 정말 몸도 아파서 시름시름 앓아 눕거나 스트레스로 갑자기 고열에 쓰러지거나 하는 일들을 자주 겪게 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무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저 성격 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은 한다.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하필 내 옆에 있었다는 상황도 문제인 것이겠고, 그런 사람들을 곁에 뒀던 나도 문제인 것이겠고. 혹은 그 사람들이 내게 상처주도록 방치했던, 나의 태도가 내게 가장 큰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패턴도 어느정도 정형화가 되었다. 이제는 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도 대충 비슷하고, 밥먹는 시간도, 하루에 몇 끼를 먹는지도 대충 비슷하다. 일어나서 뭘 하다가, 무슨 운동을 하러가고, 무슨 취미활동을 하러가는지도.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 볼까 하다가도 이미 정해진 삶의 패턴을 망가뜨리는 게 싫어진다.

어찌보면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삶의 궤적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생각해보면, 조금은 덜 욕심내면서도 이렇게 그냥저냥 살아가도,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나중나중에는 생각할 것 같다. 최소한 후회하는 삶은 절대로 아닐 것 같다.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도, 역시 몸이 조금은 더 근질근질하다. 조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2명이 차례대로 훌쩍 외국으로 날아갔는데 공교롭게도 둘다 베를린에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둘 다, 베를린에 딱히 뭘 하러 간 게 아니다. 베를린에 뭔가 배우고 싶은게 있어서 유학을 하기 위해 간 것도 아니고, 그저 새로운 삶의 전기를 위해서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둘 다 똑같이 독일어를 공부하고, 룸쉐어를 하면서 새로운 룸메이트들과 부대끼며 살아내고 있고, 가끔씩 독일의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면서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관객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고,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기 위해 애쓰면서 그렇게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유학을 가겠다, 가고싶다, 가서 뭘 배우겠다, 이런 이야기들은 주구장창 내가 먼저 해 왔었는데,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거기에 있다.

내가 그렇다고 힘없이 주저앉아서 아무런 동력도 없이 삶의 도전의식을 잃어버린채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독일에 유학을 못가서 억울해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내가 남들 보기 부끄러워서 외국에 유학을 꼭 가야만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머리가 없는 인간도 아니고, 꼭 외국에 나가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이유조차도 정작 지금은 하나도 없는 상태인데, 그저 느낄 뿐이다. 과거에 그들과 길바닥에서 맥주한잔 마시면서 벌개진 얼굴로 ‘나 한국 뜬다’ 라고 얘기하던 나 자신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꽤나 힘이 빠져서 충전중인 상태라는 것을.

연극 2달 하면서 새롭게 도전하게 된 것은 뭐가 있을까. 뭐, 사실 막무가내로 내가 쓴 연극 무대에 한번 올려보겠다고 아등바등 했던 행동들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 와중에서 많이 공부도 됐고 얻은것도 많기도 하고. 냉정하게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깨닫는 계기도 많이 됐고.

그런데 진짜로 정말 난생 처음 해보는 것에 도전했던 것은 의외로 따로 있었다. 연극을 하면서 평소의 일상 스케줄이 완전히 꼬여버린 나는 당연하게도 평소에 하던 운동도 취미생활도 다 잠시 그만둬야만 했다. 자연스레 배우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문제는 이제 다들 나이가 30줄에 들어서니 매일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것만으로는 시간을 다 보낼 수 있을만큼의 체력들이 되지가 않는 것이었다. 뭣보다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게 매번 즐거운 것도 아니었고.

그러던 차에 친구 하나가 이번에 몸도 키울 겸 연습실 옆에 있는 클라이밍을 한달정도 다녀볼까 한다는 것이었다. 실내 클라이밍에 평소에 관심이 있기도 했었고, 동네 오며가며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던 차에 시간만 흘러갔었는데, 나도 옳타구나 하고 친구들과 다같이 우루루 몰려가 한꺼번에 등록을 했다.

짭짤한 땀냄새로 가득한 지하1층엔 시크해보이는 클라이밍 센터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셨고, 정말 딱 기본적인 것만 알려준 상태에서 몸풀기 10분을 시작했다. 나도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유도로 선수까지 하려던 인간이었고, 뭐 재활까지 포함해서 운동은 거의 끊이지 않고 했었던 사람이라 남자의 호승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처음에 알려줬던 기본기, 팔에는 최대한 힘을 뺀 채로 늘어뜨리고, 다리와 전신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이동한다는 전제는 없어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손과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런거 하면 또 금방 하지- 라는 이상한 오만함에 손바닥 살이 살짝 찢어지는 기분이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센척을 해대며 암벽에 매달려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끝나고 옆에를 보니 친구들도 다같이 얼굴이 벌개져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들을 하고 있었다.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또 전신을 쓰는 운동이었다. 만일 턱걸이 하는 고릴라처럼 팔이나 등근육만을 사용해서 이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 오히려 클라이밍에서는 팔이나 등, 악력은 최소한으로만 사용할 것을 권하고, 가능하다면 전신의 힘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을 권한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근육 펌핑만을 유지하면서 긴 거리, 높은 거리를 오래, 많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모르는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었다.

몸풀기가 끝나고 가장 초보자에게 주어지는 문제가 주어졌다. 문제는 각 실내 클라이밍 센터마다 다양하게 제출되어 있는데, 보통은 임의의 시작지점과 끝지점을 정해놓고, 시작부터 끝까지 찍고 다시 시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정확하게 숫자로 지정해서 손으로 짚으면서 가도록 되어있다. 1단계 문제는 25단계 정도로 되어있었다. 즉, 갔다 왔다 50번을 찍으면 되는 난이도였다.

클라이밍의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손쉬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들 호기롭게 ‘첫날에 문제를 다 풀어버리겠다’고 도전했지만, 결론적으로 그 누구도 문제를 풀어낸 사람은 없었다. 힘을 쓰는 요령을 모르면 절대로 팔과 악력, 등근육만으로는 끝까지 찍고 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음 날, 정말 난생 처음으로 전완근이 불타오르다 못해서 터질것처럼 부풀어올라서 숟가락도 못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여서 손가락도 오그리지 못하는 채로 다들 클라이밍 센터에 와서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정말 힘든 운동이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는 특히나, 근육을 펌핑하는 스트렝스 운동은 정말 해본 지 너무 오랜만이어서 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직까지는 내가 근육을 쓰면, 근육은 펌핑이 되고, 또 근육량이 늘어나는 구나. 아직은 회복이 안될까 걱정하면서 몸을 사려야 될 정도로 형편없는 몸은 아니구나.

그 뒤로도 한 달동안 클라이밍을 참 열심히 다녔다. 친구들이 나오지 않기 시작한 뒤로도, 나는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한달동안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나가서 암벽을 탔다. 때로는 새벽에 나가서 아무도 없는 센터에서 혼자 몸을 풀고 음악을 틀어놓고 암벽을 타다가 집에 온 적도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근육 운동은 몸에 금방 새로운 자극을 줬다. 어깨가 넓어졌다는 소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다. 실제로도 어깨가 넓어지고 등근육이 커지고 앞으로 살짝 말려있던 흉추가 뒤로 넘어가는 실감이 들었다. 뭣보다 운동이 끝나고 난 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면서 턱걸이를 10개를 채우고 난 뒤에, 샤워를 하면서 펌핑된 몸을 보는 기쁨과 재미를 10년 만에 다시 느꼈다.

보디빌딩은 어쩔수없이 나르시시즘의 맛으로 하는 운동인데, 클라이밍을 하면서 그 재미를 다시 느끼는 게 신선했다. 몸이 커지고, 근육이 갈라지면서 선명해지고, 실제로 악력이 늘고 어깨가 커지는 재미, 혹은 기쁨.

항상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재활에 가까운 운동들만 골라서 해온 지가 5년이 넘었는데, 이제 그 재활의 성과가 나타났는지 클라이밍을 하면서 딱히 관절이나 인대가 아프지 않다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연극이 끝나고도 몇일동안은 클라이밍을 계속 나갔었다. 기분이 조금 우울하거나,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나가서 클라이밍을 하고, 커진 근육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좀 좋아질 정도였다. 지금은, 클라이밍은 나가지 않지만 집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 조금 더 많은 횟수를 하고, 근육이 커진 걸 확인하면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아직은, 근육이 커지는 나이구나, 라는 작은 것에서 위로를 얻고 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약간의 이유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