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받아들이는 마음

 

‘하루’는 고결하다.

끊임이 없다. 꾸준한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찾아온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하루는 시작되고, 아무리 빛을 밝혀도 하루는 끝이 난다. 오늘 맞이한 하루는 다시 오지 않는다. 내일 보낼 하루도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꾸준함과 다시는 같지 않을 하루의 성질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고결하다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고결한 단어는 ‘반복’이라는 단어 앞에 한 없이 맥이 풀린다.

머리로는 그 고결함을 알지만, 매일을 아침에 일어나 양치와 세수를 하고 꾸역꾸역 어디론가 향하는 자신을 볼 때 지식화된 관념은 흔들린다. 어제 하던 양치와, 오늘 하는 양치가 다르다는 것에 우리는 큰 감흥이 없다. 어제의 (출근 또는 통학) 지하철에선 앉지 못했는데 오늘의 지하철에서 앉아 갔다면, 그것은 고결함과는 무관한 그저 지친 몸뚱이가 잠시 편했다는 의미 이상이 아니다. 그러면서 점차 하루의 의미를,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샌가 ‘반복’이라 쓰고 ‘저주’라 읽고 있진 않은가.

시시포스의 삶을,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 살고 있단 생각이다. 꾸역꾸역 굴려 올린 돌이 그대로 다시 내려가, 그것을 다시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와 우리의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 더 많을지도.

아마도 우린 ‘반복’의 ‘축복’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반복을 통해 배우는 것. 단련되는 근육. 굳어지는 마음가짐. 돈독해지는 무엇. 커지는 사랑. 숙련되는 어떠한 성질. 연습은 반복을 토대로 하고, 반복을 토대로 한 연습은 어느샌가 우리에게 성장이라는 선물을 안겨준다. 오늘의 우리는 하루아침의 결과물이 아니다. 몇십 년을, 몇 만 일을 반복해 살아온 존재. 갖은 풍파를 겪으며 안으로는 내공을, 겉으로는 의연한 가면을 한 두 개 정도 이상은 가지고 있는.

돌아보니 내가 가진 것들은 결국 ‘하루’의 선물인 것이다.

또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은 내가 ‘하루’를 그저 흘려보낸 탓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루를 맞이하고, 보낸다는 오만한 생각은 버려야겠다.

어쩌면 아주 귀한 손님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존재. 반복해서 와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운 시간. 내가 아무리 홀대해도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결국 오고야 마는 법칙. 그래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용기.

하루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체가 고결해야 함을, 나는 어리석게도 지금에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