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꽤 진지하게 ‘나의 아르헨티나 탱고 대회 출전기’ 라는 글을 썼던 것 같은데, 그게 1년 전이었단 걸 오늘 깨닳았다. 왜냐면 바로 저번주, 그러니까 이틀전에 2019년도 한국 아르헨티아 탱고 챔피언십 겸 세계 챔피언십 아시아 지역 예선대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거기에 참가를 했다. 이로써 탱고 경력이 2년을 꽉 채우게 되었고, 문디알 대회만 2번을 참가한 경력을 갖게 되었다.

소셜 댄스를 한다는 게 아직도 크게 대중적인 취미는 아닌 한국에서, 춤을 춘다고 하면 아직도 뭔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한국에서, 나름대로 이 정도면 오래 버티고 겁 없이 대회까지 나가봤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작년과 같이 파트너도 급작스레 구한 상태였고, 연습 역시 제대로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시 크게 기대를 안했고 긴장하지 않은채로 참가했다. 정말 우리 팀은 ‘참가’그 자체에 의의를 두는 팀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한 채로 참가를 했지, 대회에 나가서 감히 그 쟁쟁한 사람들과 경쟁 속에서 진지하게 이길 것을 기대하고 나가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대회 자체에 참가를 못했겠지.

그러나 대회를 참가하면서 얻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작년에 대회를 참가했을 때도 그랬지만, 정말 잘 추는 사람들과 옆에 나란히 서서 춤을 춰 보면, 내가 어디가 부족한 부분인지가 정말 확 티가 나는 부분이다. 나로서는 그게 참 개인적으로 자극이 많이 됐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선생님 말씀대로 대회는 다른거 없이 걷기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길래, 무조건 길게 길게 걸으려고 안간힘을 썼었는데, 정작 대회가 끝나고 영상을 확인해보니 내가 가장 옹졸하고 졸렬하게 걷고 있었다.

정말 잘 추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지긋이, 정말 우아하게, 두 사람이 안고서 저렇게 긴 거리를 한걸음에 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걷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까지 나름 그래도 젊은 혈기에 춤을 좀 빨리 배운다고 내심 기고만장해 있던 게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낮은 레벨인지를 한번에 깨닫게해 준 그 대회가 한번 더 나를 각성시켰다.

대한민국에 그렇게 춤 잘 추는 사람이 많은지도 처음 알았었고,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잘 추는 사람이었는지도 새삼 다시 확인하면서 응원하게 되는 것도 재밌었다. 같은 동호회 사람들끼리 뭉쳐서 어떤 동지애를 다지면서, 새삼스레 소속감을 느끼는 행복함을 만끽하기도 했다.

올해 대회는 작년과는 좀 다른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작년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을 한 데 비해서, 대회의 열기는 한국에서 문디알 세계대회 예선이 열리게 된 이후 가장 뜨거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찌나 긴장을 안했는지 정작 대회 피스타에서도 어지간하면 심장이 뛰거나 잘하고픈 마음에 약간의 들뜸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하나도 없었던 나머지 이거 내가 좀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싶은 잡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정작 대회는 역대 최다 참가자들이 몰려들어서 대회 진행측에서 진땀을 흘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거기에 쟁쟁한 외국인 참가자 커플이 워낙 몰려들어서 묘한 기류를 형성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참가한 싱가폴 댄서 커플은 세계대회에서 5위까지 찍었던 커플이라지를 않나… 이래저래 한국인 댄서들에게는 경쟁자도 많은데다가 경쟁자의 질까지 높아져서 힘든 시간들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뭐… 워낙에 마음을 비웠더니 동호회 선생님한테서 ‘연습때보다 대회 때 더 잘하는 것 같은데?’ 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그정도 평가면 족하지 않나 싶다.

대회는 큰 이변이 없이 마무리가 됐다. 물론 나의 대회 참가도. 이번에는 거의 오전에 첫 피스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전 조, 그러니까 첫날의 거의 첫 론다에서 대회를 치렀고, 당연하지만 광탈을 했다. 첫날 오전에 가서 오전에 대회를 마무리한 나는 편하게 남은 이틀 대회를 감상했다. 그건 좋았다. 부담 하나도 없이 바로 관객 모드가 됐달까.

아, 앞서 말한 이변이 없는 마무리란 역시 외국인 전문 댄서들이 상위권을 휩쓰는 사태를 이야기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입상권에 들었던 한국인 커플이 거의 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한 네다섯 커플 빼면 나머지는 전부 외국인 커플이 가져갔다는 거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리는 문디알 본선으로 직행하게 해주는 비행기 티켓 역시 싱가폴의 커플이 가져갔다. 그들의 우승이 호명됐을 때, 워낙 잘 췄기 때문에 다들 아쉬워하는 마음도 없이 그저 ‘받을 사람들이 받았다’ 라는 분위기였다. 외국인 댄서들이 대부분 입상을 하는 바람에 대회의 공정성이 묘하게 올라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회를 마무리한 우리 동호회는 또 장소를 옮겨서 왁자지껄 뒷풀이를 진행했고, 일부는 또 눈물바다가 됐고, 뭐 당연하지만 그런 평범한 술자리 뒷풀이자리가 이어졌다.

느낀 거라면,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 새로운 도전이 다시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이어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탱고를 처음 배우려고 마음 먹었을 때만 해도, 비록 참가에 의의를 두기는 하지만 세계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하는 한국 탱고 챔피언십 대회에 내가 참가를 해서 경쟁을 할 거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서 탱고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사실 약간은 ‘웃긴 사람’ 보는 시선으로 첫인상이 박힌다. 뭐 사실 그 다음에 ‘태극권’을 하고 있다고 하면 정말로 그냥 ‘웃긴 사람’이라는 편견이 그대로 박혀서 죽을 때까지 가는 것 같지만. 좌우지간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새로운 곳에 가서 또 도전을 하고, 새로 만난 사람들과 친분을 이어가며 공통의 것을 매개체로 소속감을 느낀다는 건, 꽤나 가치있는 일이었다. 요즘에 어딜 가서 소속감이나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끼곤 한다.

항상 집단보다 개인이 우선이고, 개인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한다, 고 보는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행복한 개인들이 모인 건강한 공동체에 속해있는 느낌도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공동체나 집단이 개인의 행복을 우선해준다면 그 어떤 문제가 있겠는가. 대다수의 집단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이겠지.

탱고는 그러고보면 참 우리 선생님 말처럼, 소셜 댄스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로운 늑대처럼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채로, 밀롱가나 파티만을 찾아다니면서 홀로 낯선 이들과 까베세오를 하고 1딴따의 연애를 하며 탱고를 춘 뒤, 홀연히 집으로 사라지는 그런 일들도 가능하고, 또 그런 땅게로스들도 아주 많다. 그리고 둘이 추는 춤이라지만, 정상적으로 리드 팔로우만 할줄 안다면, 사실상 상대방과 안는다는 걸 뺀다면 혼자 추는 거라고 해도 무방한 춤이다.

하지만 그런 춤을 과연 탱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춤을 과연 소셜 댄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지극히 상대방을 생각해야 하고, 거기에 더해서 같이 론다 위에서 춤을 추는 다른 커플들과 다른 땅게로스들도 배려해야 한다. 론다는 흘러가야 하는데, 내가 회전 동작이나 화려한 피구라를 섞고 싶다고 해서 내 앞뒤에서 춤추고 있는 땅게로스들을 방해할 수 있는 권리는 전혀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이 독특하고 묘한 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탱고를 춘다고 하면 묘한 동질감과 동지애가 형성되는 게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에는 공항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라는 페이지가 있다. 이 페이지에서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뜬 사람들이 자신의 공항과 게이트 위치를 적으면, 같은 공항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춤을 신청해서 남는 시간동안 탱고를 추는 일종의 댄스 중매 페이지 같은 곳이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국적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그리고 그날 이후로는 다시는 안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공항에서 만나 핸드폰으로 탱고 음악 하나 틀어놓고 지극히 집중해서 서로를 안아준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어느새 30대가 된 감수성은 눈물마저 나올 때가 가끔 있다.

개인으로 살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내가 20대가 된 이후 계속 인간관계에서, 또는 이 근대화마저 덜 된 국가인 대한민국, 2030 청춘들에게는 헬조선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워지는 이곳에서 살아가며 고통받았던 것의 대다수는 바로 그것에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면 공동체에서는 완전히 배척되게 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자면 나 역시 다른 개인을 배척하며 살아가야 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스탠스 사이에서 어느 하나의 극단적인 것을 택했다가 늘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고통받았다.

사실은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가 않아서, 한편으로는 개인이지만,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한 일원이고 때로는 부품에 불과하기까지 하다. 20대에는 그것을 몰랐다. 두 가지가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아니 늘 두 가지가 양립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나 나는 열렬한 공동체주의자이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냉소적인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개인주의자이거나, 그 두 가지를 오가며 살았다.

내가 탱고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둘이 안고서 음악에 맞춰 걷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파트너십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파트너가 기대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심지가 굳게 혼자 서서 걸어갈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혼자만 걷다보면 파트너와 같이 걷는 건 불가능해진다는 것도.

오늘도 여러모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까운 탱고 동호회라도 들러보시는 게 어떠신지. 탱고 씬은 항상 뉴 페이스를 환영하니까. 와서 개인으로, 또 동호회원으로, 그 두 가지 자격으로 잘 놀다 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