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 소리를 듣고 가까스로 일어났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 시간에 몸은 무겁고 머리는 띵했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고 굳이 나누자면 저녁형 인간에 가깝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힘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면 피곤한 건 기본, 약간 멍한 상태로 두통에 시달린다. 저혈압이 있어서 그렇다고 나름의 핑계를 대보기도 한다. 그래서 7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이런 내가 갑자기 5시에 일어난 이유는 제주도 여행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다녀본 분은 아시겠지만,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부지런해야 한다. 항공이나 배, 기차를 이용할 때는 예약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고, 개인차량을 이용하더라도 도로에서 긴 시간 보내지 않으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물론 여유롭게 하는 여행도 좋지만, 목적지에 일찍 도착할수록 여행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니 부지런할수록 여행을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항공편이 몇 분 연착되어 기다림의 시간 끝에 비행기에 올랐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났다고 왜 이리 피곤한 것인지 좌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피곤한 느낌만 있을 뿐 잠은 들지 않았다. 머리는 아직 멍한 상태였지만 30~40분 후면 도착할 제주도의 풍경을 상상하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번은 4번째 제주도 방문이었고 내가 계획한 여행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몇 명이 함께 목적을 가지고 가는 여행에 목적 없이 끼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여행은 항상 기분을 들뜨게 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오게 된 제주도의 날씨는 화창했다. 최근 기온이 높아져 더운 날씨에 곳곳에 야자수 나무가 있는 풍경이 이국적이었다. 내가 사는 있는 부산 역시 바다가 있어 여름이면 일부러 시간 내어 휴가 온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제주도의 바다는 그곳만의 특색이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공항을 나서 렌트 차량을 찾아 근처에서 간단히 요기 했다. 일행들 각자 항공편이 달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근래에 만나지 못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제주도에서 보니 왠지 더 반가운 것 같다. 미리 짜놓았던 일정대로 움직이며 두 번째 목적지까지 이동했을 뿐인데 다들 아침 일찍 일어난 탓인지 더운 날씨 탓인지 약간 지쳐 있었다. 거기다 시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세 번째 목적지는 취소하고 바로 숙소로 갔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일행 중 한 명이 추천하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해변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손님이 한창 많은 시간이라 자리 나기를 기다리며 해안 도로의 경치를 감상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날의 노을은 점점 짙어지는 푸른색 아래로 지평선 가까이 핑크빛이 살짝 보이는 노을이었다. 붉게 물든 강렬한 노을은 아니었지만, 왠지 제주도 여름밤의 시작에 어울리는 빛깔이었다.

여행에서의 저녁 식사, 그것도 고기를 구우면서 술이 빠지면 섭섭하다. 제주도에 왔으니 한라산과 제주비어를 주문해 본다. 나는 아쉽게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제주비어만 맛보았지만 두 가지 모두 마셔본 일행에 따르면 한라산은 술술 넘어가는 단맛에 청량감이 있단다. 아마 제주 해안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마셨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음식이나 술은 맛으로만 먹고 마시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분위기와 함께한 사람들이 어울려 맛을 돋운다.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제주도의 첫 번째 밤을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숙소에서 2차를 진행한다. 마침 숙소에는 뒤뜰 같은 공간에 테이블이 있고 밤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전구가 장식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낮 동안 뜨거웠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조금 쌀쌀해졌다. 기온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제주도라 그런지 역시나 바람이 많이 불었다. 우리는 첫째 날의 들뜬 기분으로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12시까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일의 일정을 다시금 정리하며 제주도에서의 첫 번째 날을 마무리했다. 제주도 푸른 밤 빛나는 별은 보이지 않지만 한적하고 여유 있는 기분을 즐기며 편하게 침대에 누웠다. 내일의 재미있는 일정이 있어서인지 첫 번째 밤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