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동시에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 요즘 얘기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던데, 눈을 감았다 떴더니 벌써 6월의 입구에 들어섰다. 1/4분기도 아니고 2/4분기가 지나가버린 것이다. 1년의 반이 지나가버렸다. 무슨 신제품이 2019년 말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면 연말까지 언제 기다리나 했는데, 2020년 초에 발매할 예정이라고 해도 금방 나오겠구나 싶은 기분이 든다.

시간을 죽이는 방법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는 살면서 시간을 죽이는 법을 참 많이 배웠다. 초등학교 때에는 4교시만 하던 1학년이 참 그리웠다. 학년이 하나씩 올라가면서 교시가 늘어나더니 마침내 5학년이되고 6학년이 되면서 매일매일 6교시를 해야하는 날들이 오자, 나는 절망속에서 시간을 계속해서 죽여나갔다.

한국 공교육의 수준이 초등학교만 해도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생각해보면 학원을 안다니는 애들이 드물었던 그 시절에 정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애들은 정말 극소수였다. 아니, 오히려 정규 수업이 아이들을 못 따라왔다. 나만 해도 그랬다. 학원에서 이미 다 배웠고 시험까지 빡세게 치러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은게 이미 일주일 전인데, 그 진도를 학교에서 빼고 있으니 이게 재미가 있을 리가. 그렇다고 학원을 안다녔으면 그 수업이 재밌었으려나. 그건 또 모르겠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묘하게 설득력이 없었고 수업을 못 가르쳤다. 일단 본인들도 의욕이 없었으니까 뭐…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나는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개구리가 알을 낳으면 그 알은 ‘우무질’ 이라는 것이 겉을 감싸고 있게 되고, 그 알이 부화하면서 올챙이가 ‘우무질’을 뚫고 나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믿지 않았다. 어느 포인트에서 믿지 않았냐면 그 물질의 이름이 ‘우무질’이란 것을 말이다. 너무나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고 전혀 과학적이지 않아 보이는 선생님이 이상한 사투리에 쇳소리까지 섞인 목소리로 매번 우리에게 체벌을 가하던 그 50센치 자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하는 ‘우무질’이라는 단어는 너무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즉석에서 그냥 ‘개구리 알이 뭔가 우물우물한 물질로 감싸져 있으니까 대충 애들한테는 우무질이라고 하자 그래도 모르겠지 뭐’ 정도로 만들어낸 말처럼 보였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교과서에서 그 물질이 정말로 ‘우무질’이고 그 ‘우무질’이라는 게 학술적이고 과학적이며 교과서에 실릴만큼 권위적이라는 단어였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에 한참이나 걸렸다.

그래, ‘우무질’이라고 해야겠다. 나를 둘러싼 그 시간을 죽여야만 했던 시간들이 흘러가던 상황. 나는 그렇게 우무질속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를 보냈다.

체육시간을 빼면 별로 신나했던 수업이 없었다. 속셈학원을 다녔는데 속셈을 꽤나 잘하던 나는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면 칭찬을 받는다는 보상에 혹해서 한때는 수학을 꽤 좋아했었고, 덕분에 학교 공교육 수업 정도는 이미 6학년 과정을 4학년이나 5학년 때 마쳐버렸기 때문에 재미도 없었고, 국어시간에 지문으로 나오는 철수와 영희 바둑이 이야기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 집에 동화책도 한가득이고 어린이집을 가도 수족관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면 수족관 밑 책장에 만화일기가 수두룩빽빽하게 쌓여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학습만화도 참 더럽게 재미없는 내용들 투성이였는데 적어도 교과서보다야 재밌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만화보는걸 엄청 싫어해서 내가 만화를 그리는데 소질이 있고 잘 그리고 싶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초등학생에게는 너무 어려운 ‘만화 잘그리는 법’ 따위의 책이나 사줄 뿐이었다. 데셍하는 법 따위를 써놓은 책을 그저 좋아하는 마음 빼고 재능이 없는 내가 잘 읽고 해낼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만화책은 절대로 사지도 읽지도 못하게 했으니까. 게임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WHO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했던데 참… 부모세대는 끝까지 우리세대의 발목을 잡는구나 싶었다. 잡는건 둘째치고 부모세대는 영원히 우리세대를 이해할 생각이 없구나, 하는 생각까지.

음악시간도 재미가 없었다. 나는 그때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 30번을 치니 마니 하던 아이에게 초등학교 도레미파 시간은 정말 독약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피아노는 제법 잘치는 아이였던 내게 학교는 리코더와 단소를 강요했고, 나는 지금도 입으로 부는 악기를 마주하면 약간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너는 왜 이렇게 음악에 소질이 없냐는 초등학교 선생을 보면서 왜 학교에 피아노 시간은 없는지 궁금했다. 멜로디언 따위로는 체르니 30번을 증명할 수가 없었으니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너무 앞서갔기 때문일까, 우무질속에서 헤엄치던 나는 마침내 중학교로 갔고, 중학교는… 참 더 처참했다. 공부를 잘하다가 못하게 되니까 이제는 더 미칠 지경이었다. 시간이 안 갔다. 이미 아는 얘기를 가만히 앉아서 6시간씩 듣는 것도 고역이긴 했지만, 전혀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르겠을 것 같은데 내인생에 의미도 없을 것 같은 얘기를 중2병이 생겨서 하루에 7시간씩 듣고 있는건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공부는 정말 꾸준히 못했으니 고등학교 2학년, 팔이 부러지고 다시 적극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속 우무질에 갇혀있던 셈이었다. 합계 11년 정도를 나는 시간을 죽이는 법을 연마하며 지냈다. 그래도 다행히 고등학교 3학년때, 원하는 공부를 할수 있었던 대학생 때 정도는 정말 보람찬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군대가 남아있었다.

11년의 공교육이 이론 시간이었다면, 군대 2년은 압축 실전 시간이었다. 정말 뭘 어떻게 해도 보람이란게 생기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얻어갈 게 없는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방법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시간을 죽이는 법을 실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멍을 때렸다. 딴 생각을 했다. 망상에 빠졌다. 끊임없이 뭔가를 적었다. 남 뒷담화를 까기 시작했다. 정말 뭐든지 한 시간이었다.

30대가 되어서 삶이 뭔가 패턴화되고 안정화가 되었다고 느끼는 요즘, 그 10년 넘도록 단련한 시간 죽이고 사는 법이, 나도 모르게 나오고 있는 기분이다. 안 그렇게 살려고 해도, 우무질이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요즘엔 새로 배우고 싶은 운동도 딱히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을 더 잘하고 싶다. 따로 또 배우고 싶은 춤이나 움직임도 없다. 탱고를 더 잘 추고 싶다. 새로운 걸 배우러 가는 것? 이미 한참이나 시간을 뒤로 미뤘다. 보고싶은 영화나 연극도 딱히 없다. 읽고싶은 책도 딱히 없다. 하루종일 멍 때리다가, 인터넷이나 하다 보면, 정말 문제인데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시간을 죽이는 걸 잘 못하고 싶은데, 문제는 너무 잘한다. 하루를 그냥 보내버리는 걸, 나는 이미 너무 잘하게 돼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쉬고 싶어 안달이고, 일이 너무 많아서 죽을 맛이라는데, 프리랜서에 극작가라는 직업은 너무 뭐가 없어서 문제이다. 그 와중에 열심히 벌어서 최근에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신차로 뽑은 학교 선배를 봤는데, 보면서 시기와 질투의 감정도 아니고, 정말 그저 대단하단 생각만 들었다. 어떻게 저러지?

이젠 남들을 보면 부럽다, 대단하다,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는 프로세스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저러지? 이 생각이 든다. 그랜져 하이브리드를 사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따로 돈 벌어서 그랜져 하이브리드를 사고야 말았다는 그 과정이, 정말 나로서는 ‘어떻게 저러지?’ 싶다. 대단하다. 나보고는 누가 일자리 던져주면서 하라고 해도 못했을 텐데.

나보다 못한 사람들 보면서 위안을 받는건 참 저열한 짓거리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위안을 받게 되는 건 어쩔수가 없다. 나보다 더 최악의 상황인 애들을 보고 있자면, 나보다 더 안풀리는 애들을 보고 있자면, 짠한 마음과 동시에 그래도 나는 낫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면 안되는데. 사실 이런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일단 이 상황을 견디게만 해줄뿐, 이 상황을 해결하고 빠져나오게 해주는 건 아닌데.

우무질이 참 그렇다. 그러고보면 기억이 잘 안난다. 초등학교때 배웠을 때, 올챙이가 우무질을 어떻게 뚫고 나오더라? 그냥 힘으로 뚫고 나오던가? 아니면 그냥 몸집이 커지면 알아서 우무질을 뚫고 나오게 되던가? 아니면 이빨과 소화기관이 생겨서 우무질을 먹어치우고 나오던가?

우무질에 관해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그놈의 그 ‘우무질’을 배우던 딱 그 시절에 교실에서 생태 수업의 일환으로 부레옥잠과 개구리알을 키웠다는 것이었다. 창문한켠에 어린나이에는 꽤나 커다래보이던 수조를 놓고, 매일 당번들이 돌아가며 물을 갈아주고, 부레옥잠은 선생님이 그 초등학교 애들보고 사오라고 시켜서(도대체 왜?) 거기에 부레옥잠을 놓고, 올챙이알은 잘 기억이 안난다. 아마 그거까진 선생님이 알아서 했었겠지 양심상.

우무질은 곧 올챙이가 됐는데, 생각해보면 기억이 안난다. 그냥 세월 지나니까 어느새 올챙이가 돼있더라. 꽤 추운 봄날씨부터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지옥의 불볕여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올챙이와 부레옥잠을 키웠다.

부레옥잠은 도저히 꽃이 필 생각을 하지를 않았고, 올챙이들은 다리가 자라고 손이 자라고 꼬리가 점점 짧아지긴 했지만, 도무지 커다래질 생각을 하지를 않았다. 어린마음에 금방 쑥쑥자라서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커다랗고 귀여운 개구리가 되어서 빨리 나와 친구가 되어서 교감을 하고 쓰다듬고 할수 있기를 바랬지만, 올챙이는 새끼손톱 만한 크기에서 더 이상 커지지 않고 팔과 다리만 쑥쑥 자랐다. 그리고 부레옥잠은 태양빛이 너무 강해서 수조를 통째로 터뜨려버릴것처럼 내리쬐는 여름이 될 때까지도 꽃봉오리를 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 와보니 아이들이 다 수조에 모여있는 것이었다. 부레옥잠이 꽃도 피고, 올챙이도 개구리가 됐다는 것이었다.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정말이었다.

부레옥잠의 꽃을 본 적 있는가? 보라색 영롱한 꽃을 활짝 피웠다. 그리고 그 꽃에는, 밤사이에 낀 벌레들이, 정말 무슨 벌렌지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득시글’하고 징그럽게 우글거리고 있었다. 아마 부레옥잠의 꽃냄새가 벌레들을 꾄 거겠지. 토악질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개구리는, 더 이상 크지 못한채 새끼손톱만한, 그리고 아주 새까만 못생긴 개구리가 되어 부레옥잠 이파리 위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다. 친구 하나가, 개구리를 어떻게 잡아올려서 손등 위에 올려놨다. 모두가 ‘우와’ 하며 보고 있는 사이, 개구리는 친구의 손등 위에서 폴짝 뛰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게 교실바닥이었는지 교실밖이었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끼손톱만한 까맣고 작고 못생긴 개구리는 절대로 찾을 수 없었다. 벌레가 득시글하게 끓는 부레옥잠은 그날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요즘, 하루를 그냥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면, 개구리와 부레옥잠이 자꾸 떠오른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수조를 부숴버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