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스포츠의 본질.

한 해, 한 해 나이 들수록 좋은 점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두고 누군가는 ‘여유’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거창하게 ‘지혜’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본질적인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을 하든,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는 태도.

예를 들어 공부를 한다면, 뛰어난 성적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그럴 듯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 중요하고 또 보람찬 일이지만 거기에만 집착하는 것은 공허하다. 공부의 목적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1차적으로는 내적 지식의 함양 또는 지적 즐거움일 것이다. 그 덕분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는 애초에 남에게 뽐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운동, 그중에서도 보디빌딩은 많은 이들이 ‘본래의 목적’을 간과하는 분야다. 그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보디빌딩은 ‘아름다운 신체를 짓는’ 종목이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군살 없고 탄탄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근육질 몸매다. 요즘은 보디빌딩 대회도 평가 기준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고전적인 기준인 ‘거대하고 선명한 근육’ 외에도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운 신체를 짓는’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각종 구기 종목이나 유도, 복싱 같은 스포츠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고, 기록경기는 ‘기록 단축’이 그 종목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디빌딩을 포함한 모든 스포츠 종목은 공통의 목적, 공통의 본질을 공유한다. 바로 ‘건강한 신체’다. 어떤 스포츠도 본질적으로 신체를 훼손하고 건강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프로 선수, 국가대표 선수들이 승리와 기록 경신을 위해 몸을 날리는 투지를 불사르는 것은 스포츠의 본질이 아니라 ‘선수로서의 의지’다.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며 스포츠를 즐기는 일반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그럴 필요도 없는) 투지라고 볼 수 있다.

  • 약투 이슈에 대해

다시 돌아와, 그러므로 ‘아름다운 신체를 짓는’ 보디빌딩 역시, 가장 본질적으로는 ‘건강한 신체’라는 가치 위에서 기능해야 한다. 얼마 전부터 보디빌딩 업계에서는 ‘약투’가 핫한 이슈다. 보디빌더이자 ‘박승현 TV’의 유튜버인 박승현 씨가 자신의 약물 사용을 공개하면서 시작된 흐름이다. 각종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을 이용해 몸을 만드는 보디빌더와 보디빌딩 업계의 어두운 면면을 고발하는 취지다. 사람들은 이제 ‘로이더(스테로이드 사용 보디빌더)’와 ‘네추럴(불법 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않은 보디빌더)’를 구분한다.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는 보디빌더들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쇄도하고, 도핑 검사 결과를 요구한다. 몇몇은 이에 응해 도핑 검사 결과를 밝혔고, 또 다른 몇몇은 약물 사용을 인정했고, 그 외 몇몇은 무시했다. ‘로이더들은 약물 써서 쉽게 몸 만든다.’는 의견과 ‘그렇게 악플 다는 인간들은 약물 써도 저런 몸은 못 만든다. 로이더들도 노력한다.’는 의견이 지루하게 대치하고 있다.

이미 판단을 위한 자료와 근거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의견 대립이 이어지는 건, 정해진 정답이 있어서 결론 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위법하고 신체 기능상 무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다 알지만 ‘아름다운 신체를 짓기’ 위해 약물 사용을 감수하겠다는 쪽과, 정직하고 건강하고 당당하게 ‘아름다운 신체를 짓는’ 보디빌딩의 진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쪽이 각자의 정답을 쥐고 살아가면 될 일이다.

그러니 나도 내 가치관에 따라 의견을 개진하자면, ‘아름다운 신체를 짓는 일’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이 아름다움인가? 더 나아가 ‘신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니, ‘신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신체인가.

  • 약물 부작용의 사례

2017년 8월, 세계적인 보디빌더 중 한 명인 리치 피아나(Rich Piana)가 4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11세에 보디빌딩을 시작하고, 18세에 이미 틴 캘리포니아 상을 수상하고 TV 매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던 리치 피아나는 그 뒤로도 보디빌더로서의 성공 가도를 밟아왔다. 그러다 2014년과 2016년 그는 자신이 25년 이상 스테로이드를 사용해온 이른바 ‘로이더’임을 인정하는 영상으로 화제가 된다. 그는 약물 사용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 분명하며, 일반인들은 약물 사용을 자제하기를 권했다. 또한 전문 보디빌더가 되고 싶다면 약물 사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냉혹하고도 암담한 보디빌딩 업계의 현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1년 뒤, 2017년 그는 자택에서 연인에게 이발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다. 의학적 사인은 ‘심장마비’이지만 지난 25년간의 약물 사용, 당시 사망 현장에 있던 20병의 약물과 흰 가루 등으로 미루어 약물 사용으로 인해 누적된 신체 훼손과 부작용이 사망 원인일 것으로 추측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보충제 브랜드인 ‘킬잇’ 시리즈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한국에서 처음 ‘약투’를 시도했던 유튜브 ‘박승현 TV’의 박승현 씨는 방송 이후 약물 사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중량과 근매스가 떨어져가는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여기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움과 대견함을 동시에 전한다. 약물을 사용했을 때와 사용 중단 후 얼굴의 피부나 혈색이 눈에 띄게 달라져서 누구라도 그가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적어도 외적으로, 그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이 확실해보였다.

그러나 그는 ‘약물 중단 후 변화와 부작용’ 편에서, 약물 사용으로 인해 당뇨를 앓고 있다고 밝힌다. 호르몬 약물로 교감 신경계를 교란한 탓에, 정상적으로 점액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 눈에 염증이 난다고도 말한다. 더해서 방광 기능이 저하되어 요의가 자주 들고, 잔뇨감이 심한 상태라고 말한다. 더해서 성기능 저하로 발기 부전 증상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신장 또한 수액을 통해 치료 및 여과를 받고 있다고. 신체 외적으로는 감탄해 마지않을 근육질의 몸을 가졌으나, 약물 사용으로 인해 신체 내적으로는 피폐하고 병약한 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 좀, 건강하게 살자.

나 또한 보디빌딩에 관심이 많고, 꾸준히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 중이다. 단백질 보충제 정도는 따로 챙겨 먹기도 한다. 당연히 근육질의 ‘아름다운 신체’를 나도 갖고 싶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나 ‘신체의 아름다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스포츠 종목이 공유하는 본질적인 가치, ‘건강한 신체’가 보디빌딩이라고 해서 무시되어선 안 된다. 더 나아가, 신체 내외로 아름다움을 갖췄다고 해도 정신적인 성숙까지 갖춰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신체를 짓는 일’이 아닐까. 보디빌딩이건 무엇이건 간에, 결국 그걸 해내는 것은 기계나 점토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여름이 자꾸 문을 여닫으면서 들이닥칠 시기를 엿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부랴부랴 피트니스 센터로 모여든다. 대부분은 지방을 줄이고 늘씬한 몸을 만들기 위해 러닝머신 위를 달리지만,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중한다. 약물이니 뭐니 해도, 우선을 꾸준히 운동을 해내는 동안 이미 심신이 건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그거면 충분하다. 약물이니 뭐니 하는 것들의 유혹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두고 현명한 지름길이나 융통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알지만, 우리 그러지 말자. 몸도 마음도, 근육도 장기도 모두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