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쓴 맛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

어른이 되었다과 생각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다.

책임감을 느낄 때. 나이를 먹었을 때.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등.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대답은 바로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다. 아마도 삶의 쓴 맛을 봐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어린 날, 어른이 되기를 꿈꿨던 기억이 있다.

나이 때문에 하지 못한 무언가를 마음껏 하고 싶고, 허락받지 않고 어디를 가거나 먹고 싶은 걸 언제든 먹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그렇게 어른이 되었는데, 어릴 때의 서러움을 잊고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건, 참으로 철든 투정이다. 삶의 무게와 쓴 맛을 고려할 땐, 꽤나 합리적인 어리광이기도 하다.

상사나 리더가 되었다고 생각이 될 때는?

마찬가지로, 상사나 리더가 되었음을 실감할 때가 있다.

내 것 하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을 때. 예전보다 할 말을 좀 더 참아야 할 때. 스트레스가 위에서만 오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 그리고 아래에서 온 그것이 더 가슴을 후벼 팔 때 등. 요즘 들어서는 그보다 더 내가 주니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누군가로부터 ‘조언’이 아닌 ‘평가’로 돌아온 것.

주니어 때는 나의 힘든 모습과 어려운 부분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표정만으로도 많은 선배들과 동료들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줬고, 힘든 나날이 이어지더라도 그러한 관심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었다. 다들 자기 코가 석자라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힘들다 말하고, 누군가 괜찮다고 해주면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할 힘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전 날은 어느 구성원과 갈등이 생겼던 적이 있다. 그것은 업무를 하다 보면 으레 발생할 수 있는 일. 감정이 격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그 열기가 사라지면 서로 웃으며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표현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주니어 때라면, 누군가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언이라도 주었을 텐데. 지금은 ‘리더십’을 운운하며 공식적인 피드백이 오는 걸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조언’을 기대할 수 없다.
‘평가’만이 도사릴 뿐.

상사나 리더가 되면, 또 다른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다.

만인이 바라보는 원형 경기장 안에 있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오히려 주니어 때는 업무 때 할 말을 다하면서 했었는데, 리더와 상사가 되니 그럴 수가 없다. 화나도 그분을 삭여야 하고, 어처구니없는 메일을 받아도 정중한 단어를 선택하여 회신해야 한다. 그렇다고 힘들어도 제대로 말 못 하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리더로서의 자질에 대한 ‘평가’가 돌아온다. ‘조언’을 기대하면 큰 오산. 조직의 생리가 찌릿하게 매섭다.

큰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과, 위태로운 평균대 위에서 뛰는 사람 중 누가 마음이 편할까?

주니어는 마음껏 운동장을 누비는 존재, 리더와 상사는 좀 더 첨예한 곳에서 서로를 밀쳐내며 나아가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좀 더 높은 곳은 면적이 좁다. 면적이 좁으면 위태롭다. 위태로우면 예민하다. 예민한 존재들에게 ‘조언’이란 사치다. 오직, 너와 내가 누구보다 낫다는 걸 증명해야 하기에, ‘평가’가 난무하는 것이다.


세상에 공기는 널렸지만, 직장은 숨 쉴 틈이 없다.

가쁘게 돌아가는 모양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누군가에 쫓기듯 위로, 또 위로 가고자 하지만 조금씩 더 위태로워지는 고단함은 직장인의 숙명이다. 누군가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거짓인 경우가 많다. 생존을 하려면, 약간의 어느 높이라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상사나 리더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대답은 무수하지만, 공통된 단 하나는 바로 쓴 맛을 봤을때란 것이다.

삶의 쓴 맛이든, 직장의 쓴 맛이든. 그게 점점 더 써짐을 느끼면서.

그것 참 씁쓸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