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 코드로 등록했다. 굉장히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아주 그야말로 HOT한 일이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인 일이란 점에서 더 민감한 사항이다. 결국 게임을 호구잡은 이권단체들이 이래저래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단 생각이 든다.

WHO에 지속적으로 로비와 압박을 한 것이 한국의 단체들이라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는 걸 보니, 이 나라는 IT 산업이란게 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이 나라의 기성세대겠지만. 더 세분화해서 말해본다면 아마 흔히는 386세대라고 말하는 딱 그 세대. 꼰대중의 꼰대들이 되어버린 그들이겠지.

굳이 세대를 갈라서 그들을 욕하는 글 같은건 더 쓰고 싶지가 않다. 증오를 피워내는 건 정치적으로 참 잘 팔리는 주제이지만, 그냥 게임 이야기나 더 해볼까 한다. 더 정확히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아니, 사실 우리 모두는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인류는 모두 서사, 즉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태초부터,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우리는 그림으로, 몸짓으로, 춤으로, 노래로, 모방해 흉내내는 연극으로, 또 제사를 지내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또는 그 모든게 뒤섞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창작해서 전승해왔다.

태초에 이야기들은 유희거리가 아니었다. 중요한 제사 행위였고, 그림으로 그린 이야기는 단순한 그림도 단순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 그림을 그리고, 보고, 또 행위를 통해서 재현할 때 우리는 이야기에 동참하고, 그 가상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사자를 물리치고 먹잇감을 쟁취하는 이야기를 재현할 때, 그 제사에 동참하는 모두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그러나 사실은 내적으로는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감상하거나 참여하는 모든 종류의 Role Playing 은 유희이면서 동시에 맨 뒤에 Game이 묵음처리되거나 생략된 행위인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거기에 감정 이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게 나라면? 나였다면? 나의 경험에서 비슷한걸 찾아내 대입하는, 그런 행위인 것이다.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극작가가 직업이 되어버린 나인데,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건 또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억울한 일인데, 게임을 하는 거나, 만화책을 읽는 거나, 어렸을 때는 창의력을 그만큼 자극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들인데, 어려서는 참 그런 걸 많이 제한당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어려운 책들이 지금은 한글자도 잘 기억이 안 나고 그저 재밌는 ‘서사’들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나는 어렸을 때 게임을, 그리고 만화책을 더 많이 읽었어야 했다.

나는 만화영화를 좋아했고, 히어로들을 좋아했고, 판타지적인 세계를 좋아했다. 용사의 모험 같은 장르를 특히 좋아했다. 이야기 창작을 배우다보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들 중에 영웅의 12단계라는 것이 있는데, 결국 모든 이야기의 모티프나 기본 뼈대가 사실은 ‘영웅의 여정’ 이란 걸 떠올리면,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서사’에 잘 빠져들고 감정이입을 잘 했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 가장 자주 했던 상상은 만화영화의 용사들처럼, 어떤 판타지 세계로 날아가서 용사가 되어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그런 상상이었다. 더 나아가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만화속 세상을 알게 되면, 그 세상에서 집을 짓고, 누구랑 살고, 뭘 하며 노후를 꾸미고 사는 지 그런 디테일한 상상들마저 하면서 지냈다. 재밌었다. 그런 ‘살고 싶은 세계 속의 나’를 상상하는 것은 정말 가슴이 뛰고 재밌는 일이었다. 그때는 몰랐었지만, 나중에 커서 직업으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하나의 완벽하게 작동하는 세계’를 창조하는 일과 같았다. 그야말로 정교하고, 전문적이고, 힘든 작업이며, 동시에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용사의 모험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직접 용사가 되어서 날뛰는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게임을 싫어할 리가 만무했다. 온갖 게임들을 다 하고 싶었던 나날들이었으나, 어려서 우리집의 컴퓨터는 긴 세월동안 286이었고, 조금 사는 집에는 윈도우 95가 있던 1995년 즈음에도 우리집에는 윈도우 3.1만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냥 도스에 M을 깔아서 화살표로 폴더를 찾아다니며 게임을 하는게 낙이었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그런 완벽한 게임은,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구현도 되지 않았고, 비슷한 게임이 있다한들 우리 집 컴퓨터에서는 돌아가지가 않았다. 나는 용사가 되어 모험을 떠나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액션을 펼치고 싶었고, 때로는 동물도 되고 싶었으며, 때로는 내가 지은 집에서 살며 휴식을 취하고 싶기도 했고, 멋있었으면 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걸 다 할수 있는 게임들이 비로소 나오고 있지만, 그때는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게임을 만드는 상상을 했다. 이런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다, 는 욕망에서 시작된 이 상상은 사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나는 가끔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하나의 캐릭터가, 인생이 되어 살아가는 상상을 자주 한다. 어떻게 보면 연극을 만드는 상상보다도,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보다도,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상상을 더 자주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나의 모든 창작의 근간이 된 것도 같다.

문제는 상상을 하다보니까, 진짜로 그걸 하고싶어졌단 것이었다. 난 정말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초등학교때 이미 장래희망이 ‘게임 프로그래머’ 였다. 프로그래머라는 단어는 아빠한테 들어서 알게 된 단어였다.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장래 희망을 ‘게임 만드는 사람’ 이라고 하니 아빠가 ‘게임 프로그래머’ 라고 정정해준 것이었다.

그러면 그때 컴퓨터 학원을 보내줬어야지… 사실 그 무렵에 우리 집안 형편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월세방에 살면서 누나나 나나 학원은 피아노만 다니는 실정이었다. 중간에 잠깐 보습으로 속셈학원정도 다니는 것 빼면, 그시절 어린이 치곤 학원을 많이 안 다닌 편이었다. 좌우지간에 정말로 다니고 싶었던 컴퓨터 학원을 아빠는 끝내 보내주지를 않았다. 정말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빠는 자기가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 쓰던 책이라면서 (아빠는 공과대학 박사 출신이다) C언어 기초라는 책을 던져줬다.

그걸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가 있나…? 아마 있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겠나. 어디 칼텍이나 MIT 라도 다니면서 노벨상에 도전하고 있겠지.

내가 그토록 열의를 보였던 분야 중에서, 유일하게 부모 입장에서 응원할 만하고, 또 학원에 보내줄 법도 했을 일인데, 지금도 내 인생의 미스테리 중 하나이다. 부모님은 결국 나를 컴퓨터 학원에 보내주지를 않았다. 다른 학원은 잘만 보냈던 걸 보면 그냥 처음부터 컴퓨터 학원에는 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서 프로그래밍이라도 배웠으면 지금의 내 인생이 참으로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만,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게임을 만드는 걸 거부당하고 나니, 게임을 하는 걸 거부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나마 우리 집에 제대로 된 컴퓨터가 생긴 건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성장기 내내 제대로 게임을 할 만한 컴퓨터란 게 집에 없었으니, 친구들과 피씨방으로 놀러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도 컴퓨터가 없고, 피씨방에 놀러다닐 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불운했을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나는 그나마 형편이 좋은 편이었다.

처음으로 게임을 하면서 날밤을 새게 만든 <디아블로2>가 아마 초중고 학창시절에선 마지막 게임 플레이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 게임이 딱 질렸는데, <디아블로2>라는 게임의 특성상 반복되는 작업이 실증이 났었다. 사실 실증이 난 건 꽤 오래됐는데, 주변 친구들이 하도 게임을 계속 붙들고 있으니 같이 하던 것 뿐이기도 했었다. 빈약한 이야기,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세계, 화려하기만 하고 반복만 되는 액션 등, 게임이어도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요소가 더 많았었다.

그때쯤 나는 다른 취미를 가졌고, 한 몇 년동안은 게임보다도 그 취미에 더 빠져있었다. 그때 시작한게 유도였다.

다시 게임을 취미로 시작하게 된 건 본격적으로 이야기 창작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공부의 일환으로라도 나는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으면서, 또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바로 <위쳐3>였다. 어느 전쟁이 터진 판타지 세계의 사냥꾼이 되어 세계를 탐험하고 납치된 딸을 찾으러 다니는 거대한 스케일의 게임이었다. 아마 발매됐던 해에 가장 화제가 되었고, 또 역사에 남을 게임으로 평가받는 게임이었다. 특히 스토리 라인에서 굉장한 찬사를 받았었기 떄문에 안해볼 수가 없었다.

내 기억에 하루에 3시간씩 했는데도 거의 3주에서 4주 정도가 걸릴 정도로 분량이 방대했다. 나중에는 거의 괴로워서 억지로 게임을 할 지경이었다. 시작했는데 끝은 봐야되는데 도저히 끝은 나지를 않고. 세계는 정말 크고 방대하고 아름답게 잘 만들어놨는데, 이게 실제로 내가 거기 사는 사람이 아니고, 몸뚱아리는 컴퓨터 밖에서 거북목이 되어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작업이다 보니 체력이 남아나지를 않았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체력이 아니게되니, 게임에 대한 집중력도 급속도로 낮아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한창 유럽 여행을 다시 가고 싶다고 느끼던 때였는데, 다시 유럽의 시골 마을에 돌아간 기분을 낼 수 있었단 것이었다. 난 일부러 캐릭터를 말에서 내려서 걸어다니면서 유유자적하게 동네를 산책하거나, 비가 오는 밤이 되면 아궁이에 모닥불 피워놓은 어느 성의 꼭대기에 올라가 비가 오는 걸 구경하거나, 하는 식으로 그 세계를 탐험했다. 시청각적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힐링이 되는 기분은 참으로 오묘했다.

게임은 요새도 가끔, 아니 사실 자주 해보려 하지만, 역시 그때의 기억 때문에 체력 탓인가 잘 손이 가지를 않는다. 얼마전에는 역시 명작으로 평가받는 <바이오 쇼크>를 플레이했는데, 이때는 한 2주일이 걸렸다. <위쳐3>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피곤하기 그지 없는 작업이었다. 더군다나 게임이 장르가 호러다보니 깜짝감짝 놀라느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까지 받는 지경이었다. 게임이 재밌으려고 해야 되는데 참… 그래도 <바이오 쇼크>의 세계는 정말 대단했다. 수중에 세운 거대한 도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아주 나중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재는 안되는 아이디어가, 게임에서는 지금 당장 바로 눈앞에 있고 직접 그 안으로 뛰어들어 체험해볼수가 있었다. 수중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이, 바다를 워낙에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호러틱한 분위기만 빼면 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체력이 바닥나면서 게임을 두 번다시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지금도 게임을 만드는 꿈을 버리고 있지는 않다. 예전처럼 프로그래밍을 꿈꾸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즘은 게임 기획 분야에서 시나리오 파트를 따로 뽑는 모양이라, 유심히 업계를 지켜보고 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꼭한번 일해보고 싶은 분야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초등학교때의 꿈을 이루게 되는 걸지도.

게임 중독이 질병이 된 세상이긴 하지만, 글쎄. 아직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는 종교가 다르면 불로 태워죽이거나 돌로 쳐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어 보인다. 아직 근대화가 덜 된 세상이니 이해해야지 어쩌겠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