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이 너무 커서 발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고, 작은 아쉬움으로 좋은 추억을 가슴에 간직하며 여행지를 떠나오기도 한다. 오늘은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다. 이번 여행은 내가 계획한 여행이 아니었고 일정도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기 전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제주도에 온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처음부터 그 목적과는 상관없었던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 혼자만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마지막 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괜스레 가 보고 싶은 곳 여기저기가 생각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조급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목적지 한 군데를 정했다. 차로 30분,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혼자 운전을 해서 목적지로 향했다. 차량이 숙소를 조금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바뀌며 해안 도로가 나왔다. 금요일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차가 너무 많아, 서울보다 많아진 것 같다’는 숙소 사장님의 푸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었는데 오늘은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었다.

한적한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너무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오전 시간을 보낼 곳은 함덕해수욕장에 있는 한 카페였다. 원래 다른 곳을 생각하고 왔지만, 차를 대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곳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와 봐야지 그냥 가려고?’ 하는 속삭임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했다. 길 건너편 끝에서 해변가 모래사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곳을 보고 있자니 신기루를 보고 있는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흐릿한 날씨와 제주도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꽤 규모가 큰 건물이었는데 한 발 한 발 모래를 밟으며 거기에 가까워질수록 다가가면 홀연히 사라져버릴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나의 판타지 소설 같은 생각도 잠시, 카페 입구에 도착하자 한눈에도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카페를 배경으로 즐거운 듯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분위기로 볼 때 이제 막 여행이 시작되어 설렘을 가지고 신나게 아침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그들을 뒤로하고 약간의 돌계단을 지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보았던 아련한 느낌과 달리 카페 내부는 사람들로 붐벼서 그런지 꽤 시끄러웠다. 주문을 위해 카운터로 가보니 바다 쪽으로 큰 창문이 있고 바다 전망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테이블이 3개 놓여있었다. 마침 한자리가 비어있어 앉으려다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아서 카운터와 떨어져 약간 구석진 느낌을 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오픈된 곳이었지만 테이블 뒤쪽으로 벽이 있어 어딘가 모르게 아늑한 느낌을 주는 그런 자리였다.

따뜻한 라떼와 함께 먹을 빵 한 가지를 골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여기는 아까 카운터 옆의 바다 전망 자리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바닷가 쪽으로 난 커다란 창이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창 앞쪽으로 넓은 데크가 있어 바다는 보이지 않고 바다와 같은 색감의 하늘과 경치를 보기 위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함께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바깥 경치는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잠시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보니 데크가 끝이 아니라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있고 그 아래쪽에도 공간과 좌석이 많았다. 아래는 편히 누워서 쉴 수 있도록 리조트 풍으로 꾸며진 방갈로 같은 공간이 있어, 거기 누워서 바다 전망을 보고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혼자 왔기 때문에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할 생각도 없긴 했지만, 인기 있어 보이는 그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제주도에 왔던 이틀 동안 초여름의 더운 날씨였지만 오늘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쌀쌀했다. 하긴 여기로 오기 전에는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했다.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시자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주문한 모카 번을 조금 뜯어서 입에 넣자 달콤함이 느껴지며 스르륵 녹아들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라떼와 모카 번은 정말이지 환상의 궁합이다. 하긴 이런 장소에서 여유를 느끼며 먹고 마시는 것들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 만약 과다하게 볶아서 약간은 타버린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 해도 쓰디쓴 느낌보다는 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