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랐을 것이다. 예전에 썼던 잡문 중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내 청춘은 온통 어머니들의 시절이었다. 어머니, 어머니.’라는 문장이 있다. 그걸 썼을 때가 겨우 스물여섯인가 일곱이었으니, 참 성격도 급했다. 아직 서른도 되기 전에 다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말투로 청춘이 어쩌고저쩌고. 게다가 실패도 얼마 안 해봤을 때인데.

실패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렇게 배운 것을 통해 성공을 이룬다. 아마 그런 점에서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일 테다. 도식적으로 틀린 데 없기는 하나(실패가 성공을 낳았으니) 쓸데없이 거창한 느낌이 든다. 요즘은 ‘실패는 성공의 준비’ 정도라는 생각을 한다. 운이 좋아 실패(준비) 없이 성공을 이룬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패를 겪곤 하니까.

  • 또 책을 냈다.

최근에 책을 한 권 출간했다. 내 생애 두 번째 책이자, 첫 에세이집이다. 제목은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 진부하고 투박한 제목이라 고민도 했지만, 아마 ‘서른’을 명분으로 쓸 수 있는 마지막 제목일 것 같아 밀어붙였다. 허투루 출간했던 첫 책인 시집 『다시, 다 詩』와 달리 꽤 그럴 듯하게 나왔다. 자비출판에 인디자인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냈던 첫 책은 이제 출판시장에서의 상품이 아니라, 나와 지인들의 소장품이 되어버렸다. 한번 호되게 실패를 겪고 나니, 좀 제대로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획안과 목차를 구성하고, 원고를 채워나갔다. 보통의 책 한 권 분량의 80%정도를 갈무리하고서 출판사에 투고를 시작했다. 당연히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절반 이상은 답장도 없었으며, 몇몇 출판사는 메일을 읽지도 않았다. (방금 생각나서 수신확인을 해보니 6개월이 지났는데도 읽지 않은 출판사도 있다.) 100번의 투고를 각오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마흔 몇 번째쯤 연락이 왔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미팅, 출간 계약, 추가 원고 작성, 책 디자인, 출간. 2월에 계약했으니 불과 4개월 만에 책이 출간된 것이다. 이제야 좀 서점에서 볼 수 있는 그럴 듯한 모양새의 책이 나왔다.

  • 설렘보다 책임감

첫 책을 출간했을 때, 나는 설레고 들떠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책이 얼마나 대충 만들어졌는지 생각도 않고 여기저기 홍보를 하고 다녔다. 그 홍보라는 것도 전략이니 마케팅도 없었다. 그냥 책 냈다고 자랑이나 해댄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이 책을 샀다. 가게로 치면 ‘오픈빨’이었던 셈인데, 그것도 겨우 한 달 정도였다. 그 이후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각자의 책장 가장 구석에 박혀있지 않을까?지금 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 나니, 이제 그런 설렘은 별로 없다. 오히려 책임감이 막중하다. 일단 내 생계에 대한 책임감, 판매부수에 따라 손익과 명운을 함께 하는 출판사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내 글에 대한 책임감. 이 책은 추억으로 끝나선 안 된다. 내 생계의 방편이고, 나라는 사람의 브랜드이고, 더 나은 세 번째 책을 출간하기 위한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드디어 책이 나왔네! 고생 많았다.”라며 마치 내가 큰일을 다 치룬 것처럼 말해주지만, 실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나 책 냈소, 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읽어주지 않는다. 모자란 솜씨라도 카드뉴스 콘텐츠를 만들어서 sns활동을 해야 한다. 입고되는 주요 대형 서점에 수시로 얼굴을 비추며 책 진열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혹시 북 토크를 열 수 있는지 계속 두드려봐야 한다. 보부상처럼 가방에 책을 담고서 독립서점들을 순회하며 입고를 요청해야 한다. 자금만 여유 있다면 일주일에 몇 백을 훌쩍 넘는 서점 광고 매대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글을 쓰는 작가이면서, 내가 만들어 낸 책을 홍보하는 마케터이자, 방문판매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두 번째 책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도 비운의 첫 책 『다시, 다 詩』의 경로를 따를 테니까.

  • 실패(준비)는 성공(?)의

당장 거주 중인 부산의 모든 독립 서점을 조사했다. 위치와 특징, 영업시간과 취급 도서 장르까지. 명함 대신 일일이 수동타자기로 타이핑한 고급 엽서지를 동봉했다. 쉽게 버려지지 말라고,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생각나라고. 그리고 오늘부터 부산의 독립서점을 순회할 것이다. 문득,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던 때가 떠오른다. 당연히 거절당하기 일쑤일 테고, 절반 이상은 답장도 없을 것이며, 몇몇 독립서점의 책방지기는 내 책을 읽지도 않을 것이다. 겪어보니 의외로 최악의 상황은 흔했다. 그래도 어쨌든 멈추지 않으면 어디 한 곳이라도 연락이 온다. 겪어보니 의외로 한 줄기 다정함과 희망도 딱 최악의 상황만큼은 흔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문장을 ‘실패는 성공의 준비’라고 고쳐 썼다. 즉 ‘실패=준비’라는 거다. 나는 이 문장을 한 번 더 고쳐 쓰고 싶다. ‘실패는 시작의 준비’라고.

어떤 성공도 실패 없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시작도 준비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이 ‘시작’을 일의 첫머리에 두지만, 실은 시작 전에 무수히 많은 ‘준비’들이 먼저 있었다. 준비하고 시작한다. 시작한 뒤로 성공이나 실패를 한다. 그러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을 때, 우리는 앞서 가도 한참을 앞서 갔던 셈이다.

잊지 말자, 어떤 게임을 할 때의 구령이 “준비, 시-작”이었음을.나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