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
  • 뜨고 싶다.

일주일 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보다 한 달 전, 이미 나는 헬스장을 3개월 치를 등록했고 주 5일 아침마다 1시간 30분씩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생애 최대 몸무게인 90kg을 넘겼으니 살을 빼고 싶기도 했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영을 배워야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여자 친구가 수영을 다닐 건데, 같이 가자고 해서. 아무튼 얼떨결에 오전에는 헬스, 저녁에는 수영을 다니게 됐다. 누가 들으면 몸매가 좋아야 하는 직업이라도 가진 줄 착각할 지경이지만, 나는 거의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이나 쓰는 글쟁이다. 그럼에도 헬스와 수영은 체력적으로 꽤 도움이 되기는 한다.

바퀴 달린 것들에 유독 약한 편이라, 아직 운전면허증도 없고 오토바이는커녕 자전거도 제대로 탈 줄 모르지만 나름대로 운동 신경이 좋다고 믿었다. 합기도와 유도를 배웠고, 축구를 즐기고, 헬스도 초급자 이상은 되니까. 그런데 이 수영이라는 게 내가 알던 운동 신경의 영역과는 영 딴판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물에 뜨질 않았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온몸에 힘을 뺀 채로 둥둥 떠 있으면 된다는데, 나는 왜 자꾸 다리만 꼬르륵 가라 앉아 수영장 바닥을 짚는지. 하도 답답해서, 강사에게 “저는 힘을 뺐는데 왜 자꾸 가라앉죠?” 라고 하며 시범을 보였더니 대번에 “에이, 완전 힘 꽉 들어가 있구만. 운동해요? 뭐 헬스 같은 거? 원래 헬스하는 사람들이 잘 못 뜨더라고.”라고 했다. 억울했다. 진짜 힘 다 뺀 건데. 시체처럼 누워 있었는데. 그리고 헬스해서 못 뜰 것 같으면, 세상 보디빌더들은 죄다 맥주병이게?

  • 뜨지 못해서 살았던 적

사실 나는 물에 관한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다. 물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내가 활동했던 독서토론 동아리는 보기 드물게 3개 학교 연합동아리였다. 나름대로 규모도 있고, 선배들의 애정도 강해서 여름 방학이면 대학생 선배들의 주도 하에 2박3일 MT를 가곤했다. 그 해 MT장소는 밀양 표충사였다.

벌써 13년 전이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표충사 계곡은 상류에서 하류로 이어지는 계단식 지형을 따라 한편에 민박집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형태였다. 우리는 대충 중간쯤 위치한 민박집에 짐을 풀고, 바로 물놀이에 나섰다. 허벅지까지 잠기는 얕은 수심에 빙 둘러 서서 게임도 하고 물장구도 치다가, 나름 수영 좀 한다는 사람들은 바로 아래층의 깊은 수심으로 갔다. 나는 수영도 할 줄 몰랐지만, 계곡 폭이 좁아서 ‘이 정도는 개헤엄으로도 나올 수 있지.’라는 자신감으로 따라 갔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그곳은 바닥의 경사가 급해서 초입에는 수심이 얕다가 갑자기 확 깊어지는 곳이었다. 몇몇은 바위 위에서 멋지게 다이빙을 하고, 또 다른 몇몇은 유유자적 물 위를 유영했다. 나는 가슴께까지 오는 수심에서 얼쩡대며 놀았다. 그러다 점심 준비가 다 되었다는 선배의 말에 다들 젖은 몸으로 찰박찰박 계곡을 빠져나갔는데, 하필 나만 발을 헛디뎌 깊은 수심으로 주르륵 미끄러져버린 것이다. 조리 슬리퍼를 신은데다가 당황한 나머지 개헤엄도 기억이 안 났다. 수면 위로 고개만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동안, 배가 고팠는지 어쨌는지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정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중엔 수면 위로 고개를 다 내미는 것도 버거워져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저기 불과 50m 거리에 동아리 선후배 동기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이는데, 아니 불과 5m만 더 가도 수심이 얕아질 텐데.

정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생각해낸 묘책(!?)은 ‘기어서 나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는 물에 뜨지도, 수영을 하지도 못할 것이다. 자꾸 이렇게 가라앉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서 바닥을 짚고 기어서 나가자.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나는 바닥을 기어서 빠져나왔다. 물에 뜰 줄 알았다면 살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뜨지 못해서 죽을 뻔’한 게 아니라,  ‘뜨지 못해서 살았다.’고 믿고 있다. 기어나오는 묘책이 아니었다면 정말 죽을 뻔 했다.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는데 정말 파랗고 말간 하늘 언저리에 노란 빛이 스미는 게 보였다. 나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방에 누워 몇 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는데, 그러고도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하필 그날 내가 생사의 기로에 섰던 곳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 수심과 관계없이 바닥이 보이지 않거나, 가늠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 진도가 너무 빠르다.

뭐, 내가 수영장에서 물에 뜨지 못하는 변명을 위해 한 얘기는 아니지만 약간 영향은 있지 않을까. 분명 내가 의식할 수 있는 근육은 힘을 다 뺐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근육들이 물에만 들어가면 긴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수영 강습의 문제는 한 가지 더 있다. 매월 수준별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인원을 받아 운영하는 보통을 수영장과 달리 우리 수영장은 상시 등록이 가능하다. 그 말인 즉슨, ‘초급반’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서로의 진도나 수준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초급반의 인원이 가장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별적으로 심도 있는 강습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것들을 충분히 연습할 시간도 없다. 나는 초급 중에서도 거의 제로에 가까운 초급인데, 물에 뜨는 연습은 10분이 끝이었다. (물론 뜨지 못했다.) 발장구 연습도 10분, 숨 쉬는 연습은 5분.

고속으로 나가는 진도 탓에 이제 겨우 일주일을 다녔는데 키판을 잡고 자유형 팔돌리기를 하고 있다. 어찌어찌 따라가고는 있고, 또 우습게도 따라가다보니 어찌어찌 수영이 되기는 하는 것 같다. 문제는 다들 ‘수영’을 하는데 나만 ‘헬스’를 한다는 것. 여자 친구를 비롯해 아주머니 등등 분명 나보다 근력이 강하지 않은 여성분들이 여유롭게 자유형을 할 때, 나는 허벅지와 엉덩이가 터질 것만 같고 호흡이 가빠 중간에 자꾸 서야 했다. 이건 뭔가 잘못 됐다. 나만 이렇게 힘들 수는 없다. 그러다가 수영 강사님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진도가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 머리로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엔 여자 친구와 함께 운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더해서 살까지 빠진다면 더 좋고, 더 더해서 생존 수영까지 해낼 줄 알게 된다면 금상첨화. 어차피 수영 선수를 할 것도 아니니까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잘 안 됐다.

우선 저녁 8시 초급반 약 25명 중에 내가 가장 열등생이다. 민폐 끼치기 싫어서 항상 대열의 제일 마지막에 선다.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눈에 자꾸 보이니까 신경이 쓰인다. 저 분은 엄청 뚱뚱하신데도 저렇게 가볍게 수영을 하시네. 저 분은 그저께 오셨는데도 벌써 나만큼 하시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분명 알 것 같은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안 되는 걸까. 겉으로 티내기 싫을 땐, 물속에서 주먹을 쥐고 소리를 지른다. 수경을 쓰고 헤엄치던 분이 보셨다면 깜짝 놀라셨겠지.

집에 와서는 유튜브로 수영 강습 동영상을 찾아봤다. 물에 뜨는 법, 자유형 발차기하는 법 등등. 누구는 힘을 빼라 그러고, 누구는 슈퍼맨 자세를 취하라 그러고, 또 누구는 배꼽 아래 부분 코어에 힘이 들어 간다 그랬다. 다음 날 수영장에 가서 따라 해보면? 여지없이 나는 가라앉았다.

어제는 또 진도를 나가서 자유형 양팔을 다 돌리고 숨을 한 번 쉬는 걸 시작했다. 자신이 없었지만, 또 내가 해야 된다 그러면 일단 해보기는 한다. 혼자서 호흡도 달리 해보고, 팔을 휘젓는 템포도 바꿔가면서 연습을 했는데, 얼추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세는 엉망이겠지만 추진력도 꽤 생겼고, 레일 끝까지 완주할 만큼의 호흡도 익혔다. 약간, 수영이 재미있어지려는 참이었다.

세상에는 머리로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몸으로 아는 게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학습보다는 체득이 더 유용한 일들이. 자전거 타기가 그렇고, 수영이 그렇다. 아마 ‘몸의 일’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나는 수영을 이제 겨우 일주일 배웠지만, 자유형 팔 돌리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물에 뜨는 법은 모르지만, 그래서 수영을 헬스처럼 힘으로 하고 있지만, 하다보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수영도 몸의 일이니까. 오늘도 별 소용없을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오늘도 수영장에 가야한다는 사실이라는 건 잊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