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깊이

 

슬럼프다.

슬럼프는 무기력 사이에서 움튼다. 한 순간의 무기력은 차곡차곡 쌓여 학습된다. 그리고 그 학습된 무기력의 힘은 막강하다. 모든 의지를 꺾는다. 어제의 다짐도, 오늘의 행복도, 내일의 희망도 앗아간다. 희망이 있는 곳에 절망과 시련이 있다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시간이다.

슬럼프는 말 그대로 움푹 파인 어떤 곳이다.

그곳으로 쿵. 부지불식간 어둠에 휩싸인다. 사람은 어둠에 갇히면 본능이 살아난다. 무기력함과 본능은 찰떡과 같이 맞아떨어져 시너지를 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마냥 먹고 마냥 잠든다. 어디로 왜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을 단 번에 올라갈 수 없단 현실적 깨달음과 학습된 무기력이 만든 결과다.

재밌는 건 슬럼프도 진화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의 슬럼프는 방향을 잃는 정도였다. 뭔가 열심히 그리고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어디에 왜 있는지 모르는 낯선 기분. 그게 다였다면, 지금은 좀 더 무섭다. 가야 하는 방향을 알고 있는데도 이런 반갑지 않은 시기를 겪어야 한다는 것.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아는 상태에서의 머뭇거림은 스스로 애처롭다. 내가 무엇을 만들어간다는 느낌보단, 애타게 무엇이 일어나길 바라고만 있는 무력감. 내가 가졌던 자신감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낮엔 더웠지만, 식어버려 서늘한 오늘의 날씨가 곧 내 맘과도 같다.

슬럼프가 자신을 돌아보는데 좋은 기회라는 걸 억지로 되뇌어본다.

그래. 나는 사심(私心)이 많았다. 그것에 휩싸여 있었단 걸 정신이 들어서야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 모든 건 ‘항상 잘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지나치면 사심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넘어지고 나서야 돌부리가 솟아 있는 걸 발견한다. 돌부리는 잘못이 없다. 원래 솟아 있었다. 그런 거였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바람 때문일까. 아니, 흔들리는 건 내 마음이다. 원래 솟아 있던 걸 보지 못한 내 마음. ‘항상 잘하려는 마음’이 과해질 수 있단 걸 잊었던 거만함. 어쩌면 슬럼프라는 어두운 계곡 사이로 떨어진 나는, 떨어진 게 아니라 황급히 뛰어내려 숨은 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슬럼프는 직장인의 지병이다.

요즘은 ‘유병 장수’의 시대가 아닌가. 오래 버티려면 아픔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의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편이 낫다. 슬럼프라고 이 순간을 회피하기보단 받아들이고 방황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슬럼프도 ‘빨리’ 해치우려는 마음은 좀 접어야겠다. 지금껏 ‘빨리’가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살아왔으니까.

방황의 깊이가 좀 더 깊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빨리’란 단어를 좀 잊을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나의 본능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도록. 허겁지겁 대충 일어나 어설프게 뛰지 않도록. 넘어진 김에 바닥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잡초도 보고, 흙도 만져보고, 그냥 누워서 두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눈 앞에 펼쳐진 하늘을 봐야지.

방황의 깊이가 깊으면, 성장의 크기도 높아지리란 기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