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私心)이 직장생활에 끼치는 영향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해.
그게 마음이 편해.”

존경하는 임원분께서 일러주셨다.

솔직히, 그리 공감이 되진 않았다. 손해를 보라니. 각박한 직장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내 것을 더 챙기지 못하면 바보가 될 판국에.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가 꽤나 어려웠지만, 조언뿐만 아니라 실천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마냥 거부할 순 없었다. 그 임원 분은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사비로 해외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사 갔다. 직장 생활 꽤나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임원분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비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것이 회사로부터 제공이 되니까. 그런데도, 김이나 김치 또는 한국 과자 등을 바리바리 싸가시는데 그 짐 또한 웬만하면 직접 다 들고 가시는 분이었다. 업무 스타일도 그와 비슷한데, 아무리 열 받게 하는 메일이 날아와도 그것을 감정적으로 맞받아치거나 하시는 일은 절대 없었다. 때로는 저렇게 그냥 가만히 계셔도 되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슬럼프와 함께 떠오른 그분의 말씀

최근엔 슬럼프를 맞이했었다.

슬럼프야 직장인의 지병이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으나, 어디 슬럼프가 호락호락 한가. 마음은 어두워지고, 얼굴엔 그게 드러나고,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의 동굴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문득 임원분의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해”란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차차, 그러고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건대 슬럼프의 이유는 바로 나의 ‘사심’이었다.

사심의 본뜻은 ‘제 욕심을 채우려는 사사로운 마음’을 뜻한다. 즉, 어떠한 일에 욕심이 과했었다. 그리고 그 욕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마음의 불순물이 가득했었음을 깨달았다. 잘하려고 했던 일이, 나에게 유리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거추장스러운 것을 제거하려 했던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가끔 나는 나의 열정에 취한다.

순수한 열정은 주위 사람들을 함께 모두지만, 불순물이 가득한 그러니까 사심이 가득한 열정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들을 짓밟고서라도 내 것을 이루려는 욕심과 다름없다. 본래, 취하면 결국 사람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해.”란 말.

결국 사심을 줄이는 마음가짐이었다. 벌어진 일과 상황에 외부 환경만을 탓하고, 나를 왜 이리 알아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나를 자꾸 슬럼프의 구렁 속으로 밀어 넣을 때였는데. 그 말이 떠오르면서 마음 한쪽을 짓누르던 압박감과 답답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결국,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나의 못된 마음으로부터였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슬럼프는 나에게 또 보자는 악수를 하고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순수함, 진심이 필요하다!

순진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지만, 순수함은 진심을 동반하며 힘을 발휘한다.

나에게 얽히고설킨 직장에서의 무수한 억눌림들에서 나의 사심을 덜어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동안 직장에서 누군가를 이기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휩싸인 적이 몇 번 있는데, 돌이켜보니 그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했다. 사심이 나보다 훨씬 적었다고 볼 수 있다.

보리차를 끓이고 상온에 놓아 시간이 흐르면 불순물이 생긴다.

나는 그렇게 사심으로 우려낸 불순물을 가득히 안고 있었다. 그러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마음이 편할 수 있었을까. 냉장실에 넣거나, 아니면 끓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시거나. 불순물이 생기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다시 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가장 신선한 물로 남아있기로 다짐했다. 내 마음은 방금 끓여 놓은 보리차이니, 불순물이 생기기 전에 마음 가짐을 순수히 해야겠다고.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이, 누군가를 꼭 이겨먹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나를 자유케 했다.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는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불순물이 가득해질 때까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을 땐 그 모든 것이 오만임을 깨닫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나만의 열정에 취하지 말고, 혹여나 마음에 불순물이 생기지는 않았나 항시 돌아보고, 남이 어떻게 되나 보다는 나는 어떻게 잘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결국 나를 살리는 일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조금 손해 봄으로써 그 이상의 것이 돌아온고 나는 확신한다.

좀 더 순수해져야겠고, 그 순수함을 바탕으로 진심을 키우는 것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스스로, 잘 살아남을 수 있겠단 확신이 드는 오늘.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