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국지를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 만화로든 그냥 줄거리로든 세계사 시간에 중국 역사를 배우면서 알게 되든, 어떤 방식으로든 삼국지를 접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만화로 많이 접했는데, 사실 나는 그닥 삼국지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유비, 관우, 장비 가 여포랑 같이 3대1로 맞장을 뜨는 부분까지는 무협지의 느낌도 나고 좋았는데, 이제 대규모 전투와 정치의 영역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면 1대1 싸움의 맛은 전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얘네가 무슨 장풍을 쏘는 것도 아니요, 어린 나이에 그게 뭐 크게 재미가 있는지 느끼지를 못했다.

근데도 학창시절 반마다 꼭 있는 삼국지 덕후들이 있었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의 이름 대기로 게임을 해서 점심시간 1시간을 다 보내고도 집에 가기 전 까지 쉬는 시간도 모자라서 야자 시간에 쪽지로까지 혈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만… 삼국지가 재밌기도 하구나. 나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 하면서도 도저히 손이 잘 가지가 않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삼국지를 읽을 일은 거의 없었다. 사실 삼국지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무슨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스탠다드한 인간상은 아니어서, 극작을 공부할 때도 딱히 삼국지를 연구하거나 공부할 일은 없었다. 발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변에 조조 같은 사람 본 적 있는가? 관우 같은 사람은? 유비 같은 사람은? 어딘가에 있어!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진짜 어딘가에 있는 거지 그렇게 완벽하게 교활하고, 완벽하게 의리로 뭉쳐있으며, 완벽하게 유들유들하고 속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반면에 그리스 비극이나 신화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은 굉장히 스탠다드해서 우리 주변에서, 또 우리 내면에서 굉장히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성격들인 것이다.

좌우간 그렇게 됐으니 한동안은 삼국지를 잊고 살다가, 최근에 한 게임 회사에서 삼국지를 만들면서 유튜브에 갑자기 삼국지가 엄청나게 뜨기 시작했다. <토탈 워> 라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인데,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으로는 상당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 시리즈에서 최초로 삼국지를 주제로 게임을 내놓은 것이었다. 2019년, 바야흐로 21세기, PC 게임에 대한 기술력과 문화가 물이 오를대로 오른 지금 현시점에서, 명작게임으로 유명한 소위 ‘믿고’ 할 수 있는 갓게임 <토탈워>에서, 가뜩이나 한국에서 팬덤이 자글자글한 삼국지를 소재로 게임을 낸다?

평소 게임 유튜브를 즐겨 보는 나는 지난 몇 달 정말 짜증이 날 정도로 <삼국지 : 토탈 워>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핫한 게임이고 보기에도 재밌어 보이는 건 사실인데, 문제는 나는 삼국지를 안 좋아한다고…

그 와중에 또 신작 삼국지 게임이 나왔다고 반에서 꼭 한두명씩 있던 삼국지 덕후에서 게임 유튜버가 된 사람들(예를 들면 이말년이라든지)이 삼국지로 말장난에, 원작 이야기에, 실제 역사 이야기에, 게임 이야기에… 진짜 잘 보고 있던 채널도 구독을 끊고 싶게 만드는 심정에 돌아버릴 뻔 했다.

그렇다고 내가 중국 문화를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학사학위를 따려고 서울 사이버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중국학과를 전공해서 현재 학사학위를 딴 상태고, 중국어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으며, 나중에 어학연수를 갈 계획도 현재 건재한 상태인데다가, 삼시세끼 중국요리만 먹어도 좋다고 할 사람이 나이면서, 세계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밌게 읽었던 파트 역시 중국사이고, 중국 무술인 태극권까지 4년째 하고 있으니, 주변에 나보다 중국 문화나 역사에 호감을 가지고 재밌어하는 사람도 드문 것이다.

그런 내가 유독 삼국지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모르겠다. 정말 어릴적에 기대했던 것처럼 장풍을 쏘지 않는 재미없는 어른들의 정치 싸움이 싫어서? 그러고보면 갑자기 초등학교였나 중학교 쯤에 대유행했던 드라마 <야인시대>가 떠오른다. ‘거리의 독립군’ 이라느니, 자릿세 받는 식당 주인이 일개 깡패놈인 김두한에게 절절 매면서 ‘두한이, 오늘은 이것밖에 없네, 그래도 일본놈들 물리쳐줘서 고마웡!’ 따위의 지금보면 정말 말같지도 않는 개드립의 향연인 이 드라마는, 그 시절 같이 드라마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기억하겠지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야인시대>의 1부는 어린 김두한이 청년 김두한이 되어, 구마적으로 대표되는 선배 주먹들을 쓸어버리고 조선 최고의 주먹(이라고 쓰고 깡패 범법자)이 되어 일본 경찰 세력(이라고 쓰고 합법적 치안 담당 공권력)들과도 담대하게 맞서는 참으로 어린아이가 보기에 멋진(현실은 쓰레기 같은 인간의) 무협 활극이었다. 실제로 시청률도 대폭발이었던데다가, 안재모의 연기, 그리고 회당 한번씩은 꼭 등장하는 화려한 액-숀 씬, 거기에 굉장히 뚜렷한 선악의 구분으로 어린 남학생들이 열광할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근현대의 구 일본제국 치하의 경성이라는 공간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공간인데, 여기에 무협의 요소가 들어가니 신선함으로서나 재미로서나 만인이 뻑이 안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뒤에 벌어질 비극도 선명히 기억하리라. 1부는 일본제국의 치하 경성의 저잣거리에서 전설적인 한방을 가진 최고의 주먹(실제로 김두한의 별명이 잇뽄이었다고 하는데, 상대를 주먹 한방에 보내버려서라고)으로 성장하는 청년 김두한의 이야기였다면, 2부는 일제 치하가 막을 내리고 광복을 맞게 되며 더 폭풍같은 근현대사의 복판으로 들어서는 중장년 김두한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이때 당연히 배우의 교체도 일어났고, 흩날리는 광복의 태극기 아래에서 안재모의 얼굴이 ‘궁예’ 김영철 배우의 얼굴로 바뀌는 그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모두 다 아는 그 ‘야인시대 시청률 반토막나는 순간’이었다.

2부는 배우만 교체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톤과 성격도 굉장히 많이 바뀌었는데, 1부가 뚜렷한 선악의 구도 속에서 그저 협객 김두한의 이야기가 주였다면, 2부는 폭풍의 근현대사, 광복과 분단, 건국과 전쟁, 전후의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서 단순한 협객에서 정치적 상황에 맞춰 행동하는 좀더 복합적인 인간 김두한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협객 김두한에 열광하던 학생들이 이런 근현대 정치의 격동에도 똑같이 열광할리는 없었고, 야인시대 2부는 그렇게 반토막난 시청률과 함께 ‘내가 고자라니’로 유명한 심영 짤만을 영구적으로 재생산해내는 무한동력의 원천 같은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중국의 4대 기서라고 하면 보통 삼국지, 수호지, 금병매, 그리고 서유기를 꼽는다. 내가 재미없어하고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안읽을지도 모르는 그놈의 <삼국지>만 있는 게 아니라, 4권의 책을 한꺼번에 칭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삼국지를 제외하고는 크게 인기가 없다. 재밌는 건 이 4대 기서가 상징하는 ‘세계’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삼국지>는 천하, 즉 국가를 다룬다. 정치적인 투쟁과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 그리고 모든 것을 통제하기 위한 힘싸움이 주가 된다.

<수호지>는 강호, 즉 민간의 영역을 다룬다. 강호를 딱히 한국적 단어로 변환시킬 만한 게 없긴 한데, 한국엔 국가인 ‘천하’와 대비되는 민간영역인 ‘강호’가 단 한번도 제대로 존재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만 해도 상유정책, 하유대책이라고 해서 위에서 공산당의 정책이 있다한들, 말단의 지방 자체 단체에는 다 대책이 있다는 식으로 어느정도 천하와 강호가 분리되어 있는 인식이 있다. 국가의 일은 국가가, 민간의 일은 민간이, 라는 이런 인식은 강한 공산당의 통제가 있음에도 중국인들의 마인드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개념이다. 반면 한국은 한번도 본인들만의 민간영역을 제대로 가져본 역사가 없다. 그러니 이 대비되는 개념인 ‘강호’에 대해서 딱히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아리까리한데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딱히 뭐라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으면 바로 그게 맞다. 그게 바로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강호’의 세계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쭉 ‘강호’의 사람이었지 ‘천하’의 사람인 적은 없었다. 물론 강제로 천하에 속해서 천하의 논리에 따라 살아오긴 했지만, 한번도 그게 마음 편했던 적은 없다. 나는 얼핏보면 사회부적응자나 과격한 아나키스트에 가까울 정도로 통제적인 상황이나 국가와 민족 같은 개념을 싫어하고 거부했다.

내가 삼국지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래서였던 것이다. 나는 유비나 관우 장비보다도 호랑이를 손으로 때려잡았다는 무송이 더 좋았다. 야인시대도 강호의 세계였던 1부가 끝나고 천하의 세계로 넘어가는 2부가 되자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강호의 협객’들을 보고 싶은데, ‘천하의 장수’들이 투쟁하는 세계는 내게 너무 재미없고 흥미없는 세계였다. 내 상상속에서 나는 ‘무송’은 될 수 있었지만, 내가 ‘관우’가 된다? 관우가 싸우자 하면 달려나가서 죽는 보병 3 정도는 될 것 같았다만. 나는 삼국지가 딱히 와닿는 세계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매력적인 세계로 보이지도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그러고보면 참으로 ‘천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정치적인 투쟁을 좋아하고, 교활하고 악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욕하면서도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꽤나 인정해주는 이상한 심리들도 가지고 있다. 패거리를 형성하는 것도 그렇고, 출세하려면 일단 공직에 나가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고시를 쳐서 공무원이 되려는 것도. 아직도 <삼국지>가 초중고 필수 도서에 포함되어있는 걸 보면, 참 사회가 강조하고 좋아하는, 그리고 추구하는 세계가 명확하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중국도 현재는 ‘강호’는 거의 없어지다시피하고 ‘천하’만 존재하는 듯 하다. 공산당의 1당 체제가 강화되면서 <수호지>의 세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민간회사인 줄로만 알았던 화웨이가 사실상 인민해방군 소속의 군부대에 가깝다는 게 밝혀지고,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보여주는 중국의 민낯은 현재 <삼국지>만 존재하는, 그래서 ‘천하’만을 논할 수 있는 점에서 생각보다 더 한국과 닮아있다는 인상을 준다.

나는 <삼국지>만 존재하는 사회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딱히 매력따위 없고, 미래도 없다고 느낀다. 4대 기서 중 <금병매>는 인간의 욕정, 그리고 현실세계를 다룬다. 그리고 내가 4대 기서 중에 유일하게 읽어본 책이기도 하다. 개인의 미시적 관점들의 세계, 그리고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개인적인 성적 욕망에 집중해서 극작을 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서유기>는 상상의 세계를 다룬다. 현실에서는 그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에 유학 갔다 온 어느 승려의 유랑기가,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라는 정말 희한한 4인팟이 불법을 찾으러 가는 길에 무수히 많은 요괴들과 싸워나간다는 모험 활극으로 탄생한 걸작이다. 주성치의 영화로도 가장 잘 알려진 이 낭만적인 작품은 인간 상상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직 여전하다는 인상을 나는 한국사회를 볼 때마다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대가 바뀌면서 굉장히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 사회는 더 개인적인 세계로 나아가고 있고, 미래 세대는 전체보다도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삼국지>만 읽어 온 꼰대 아저씨들의 세계가 여전히 건재하지만, 그 밑에 있는 청년 세대는 이미 그 시절 아저씨들을 뛰어넘어 개인과, 자유와, 상상의 세계, 무엇보다 천하에 맞서는 강호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삼국지의 세계도 필요하다.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 제대로 통찰한적도 그간 드물긴 했다. 그저 국가를 추구했을 뿐이지. 그간 공고했던 삼국지의 독점 체계가 무너진다면, 그런 통찰도 곧 시작되리라 본다. 오랜만에 금병매나 다시 읽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