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과 온도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함으로(실은 제대로 된 종이 명함 하나 없으면서) 글밥을 먹은 지 벌써 3년째다. 처음엔 누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저는 ○○ 작가 김경빈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민망하기까지 했다. 물론 어색하고 민망한 와중에도 기쁜 건 당연했다. 작가라니, 내가 작가라니.

처음 라디오 작가로 일하게 됐을 때가 기억난다. 추천 받아 간 자리라 사실 경쟁이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면접은 꽤 긴장감이 넘쳤다. 유능하고 호탕한 여걸 타입의 국장님은 이리저리 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우리 일이 이런 거, 저런 거, 가끔은 이딴 거까지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이리저리 잴 것 없기로는 내 쪽이 더했으니,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오케이! 그럼 해봅시다. 내일 2시 반까지 방송국으로 와요.

그날 밤, 여자 친구를 내 원룸으로 불렀다. 치킨인가 뭔가를 시켜 야식을 먹고 맥주도 마셨다. 술을 마시기 전부터, 라디오 작가가 된다는 사실에 이미 기분은 흥건히 취한 상태였다.

당시 우리는 8년째 연애 중이었다. 여자 친구는 이미 졸업해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전과와 휴학을 있는 대로 다 해버린 나는 그해 겨우 졸업을 했다. 그러고도 나는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겠다는 맹랑한 목표를 놓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돈 없고 빽 없이, 어디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도 아닌 국문과 졸업생 옆을 8년이나 버티고 있는 여자가, 21세기에도 있었단 얘기다. 소설 같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당장 라디오 작가가 된다고 해서 몇 억이나 몇 천, 아니 몇 백이 덜컥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기분만은 모든 걸 이룬 것 같았다. 여자 친구도 덩달아 신이 나서 우리는 너무 먼 미래의 행복까지 끌어다 와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유명한 작가가 될 거고, 책도 낼 거고, 돈도 많이 벌 거고, 오순도순 우리 둘은 행복하게 잘 살다가, 그래도 죽는 건 자기가 먼저 죽겠다는 얘기도 했다. 내가 먼저 죽으면 혼자 남겨지는 일이 두렵다면서. 그렇게 마시고 떠들다가, 울어버렸다. 행복에 겨웠던 것 같다. 드디어 내가 글로 돈을 번다. 작가가 된다. 라디오 작가가 된다.

그 과정의 다사다난함은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4개월 만에 맡고 있던 프로그램 작가를 관뒀다. 열정에 비해 나는 너무 무능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했던가. 무능한 사람이 열정을 가지면 비참해진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밤새 준비한 원고는 생방송 1시간 전에 ‘빠꾸’ 당하기 일쑤였다. 몇 줄 안 되는 오프닝 멘트가 어찌나 어렵던지. 프로그램의 메인 DJ이자 PD이자 나를 뽑은 장본인이었던 국장님은 어쭙잖은 작가 때문에 두 번, 세 번 일을 해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나를 꾸짖거나 감정적으로 깎아내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건, 지금까지도 내가 국장님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다. 때마침 다가오는 개편 시기에, 나는 부딪히기보다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면목이 없었다. 국장님에게도, 여자 친구에게도, 행복에 겨워 눈물 흘렸던 나에게도.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도 2년 동안 특집 라디오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참여했다. 국장님이 친히 나를 불러주신 덕이었다. 2년 내내 내 열정과 능력의 반비례 곡선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난 힘이 됐다. 어떻게든 일정을 소화해내려 노력했고, 어떻게든 2년 간 2개의 라디오 다큐멘터리 제작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중 한 작품은 올해 뉴욕 페스티벌 라디오 인권 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상에 내 지분은 매우 미미하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라디오 사태(!?)를 겪고도 글밥을 먹어야겠다는 나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차라리 아집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오기로 밀어 붙인 것은 아니었다. 그만 두고 싶다가도, 기술을 배워 타일공이나 미장공이 되어 볼까 싶다가도, 스스로를 믿지 못해 역학원을 찾아가 사주팔자에 운명을 떠맡기려다가도, 때가 되면 결국 글을 쓰고 있었다. 대단한 작품을 쓰는 예술가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뻔뻔하단 걸 알지만,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글을 놓지 않은 덕에 뜨문뜨문 성과는 있었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칼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브런치에서 위클리 매거진을 연재했고 허술한 시집도 한 권 냈다. 그러고도 생계를 꾸려내기에는 돈이 부족해서 1년 가까이 택배일도 했다. 주 6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3,4시까지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일을 하는 건 수월하진 않았다. 하지만 절대 엄살을 피울 순 없었다. 나와 함께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런 일상에 대해 엄살 피우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다. 써야 하는 글도 쓰고, 쓰고 싶은 글도 썼다. 시도 쓰고 에세이도 썼다.

그렇게 1년쯤 지나니 책 한 권 분량의 원고가 모였다. 기획안과 원고를 갈무리해서 출판사 투고를 시작했다. 선배 작가의 말로는 100군데는 넣어야 4,5곳에서 답장이 온다던데(단지 답장일 뿐이다. 출간 계약하자는 내용이 아니라) 운 좋게 46번째 투고를 준비하던 중에 답장을 받았다. 서둘러 서울로 올라가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하고, 여차여차 올해 6월에 책이 나왔다. 제목은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

내가 쓴 책이니 알리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과 이 책으로 글밥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부산의 독립서점들을 손수 방문하며 책을 건네고 입고를 요청했다.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에도 가방에 열댓 권을 바리바리 싸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군데 넘는 서점을 방문했다. 대부분은 시큰둥했고, 몇몇은 친절하지만 사무적이었고, 2,3곳은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렇게 50여 곳을 돌고 나서 입점한 서점은 딱 1곳. 다시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고 입고 요청을 해볼 계획이다. 발로 뛰는 열정은 이쯤이면 됐다 싶기도 하고, 어찌됐든 이제 진짜 여름이기도 하고.

독립서점을 돌다가 한 책방지기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다. “요즘 출판 시장이 다각화되고 커진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특이한 게, 독자보다 작가가 넘쳐나요. 공급만 마구 늘어나고, 수요는 지엽적으로만 활발하고. 뭐, 아무튼 그렇다고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물 한 잔 마실래요?”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세상. 글쎄 뭐, 자본주의를 떼놓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세상이겠다 싶었다. 아니 근데 그게 가능한가?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거 아닌가? 사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수요공급보다는, 작가와 출판사 사이의 수요공급이 더 활발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다. 마음만 먹으면 1인 출판사 차려서 직접 책을 내는 세상이니, 작가가 독자보다 많은 것도 당연하다 싶고.

영도 흰여울 문화 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인 ‘녹색광선’에 들렀을 때, 눈에 띄는 책이 있어 한 권 구입했다. 이슬기 작가의 에세이 <일인분의 삶>. 구입하고 보니 꽤 핫한 독립서적이었다. 작가소개를 보니 나랑 같은 부산에 거주하는 작가다. 나이대도 서른 즈음으로 비슷하다. 독립서적은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기획과 구성이 다양한 반면, 작가로서의 전문성이나 글의 완성도는 낮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일인분의 삶>을 읽고 깊게 반성하는 중이다. 배우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한 번쯤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책이 출간되고, 판매와 홍보에 혈안이 되어서 정작 글을 읽고 쓰는 일에 게을러진 요즘. 내년에 나왔음 하는 두 번째 에세이 원고 작업이 거의 3주째 중단 상태다. 쓰기 싫다기보다, 뭘 써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글감은 자주 보고 쓰다듬어줘야 곁에 머무는 고양이 같다. 오래 무신경했더니 골목 어귀를 돌아 휙 떠나버린 것처럼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헛헛하다. 억지로 뭘 끄적여도 온통 건조하고 밋밋한 콘크리트 벽 같은 문장들만 쌓인다. 최근엔 카카오메이커스와도 일을 하게 됐다. 그 덕에 여기저기 글을 쓰고, 글밥을 버는데 약간 속이 텅 빈 글을 쓰고 있다는 회의가 밀려들 때가 있다.

어제도 쓰고 싶은 글은 안 써지고, 써야 할 글만 가득이라 답답한 마음에 TV를 켰다. 다시보기로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을 골랐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녀 배달부 키키>와 <이웃집 토토로> 두 작품에 대해 MC와 패널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세종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텍 전공의 한창완 교수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빛을 그려 낸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바람을 그려 냅니다.”라고 말했다. 듣고 나서 보니, 과연 그랬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특유의 부드러운 생동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했더니, 섬세하게 그려낸 바람의 결이 해답이었다.

흰 종이 위에 검은 활자. 물리적으로 책이라는 건, 문장이라는 건 그렇게나 단출하다. 작가는 그 활자 속에 오감을 덧칠하고 감정을 불어넣는 존재일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빛과 바람과 온도가 머무는, 그런 글을.